내 자리에서 열린 회의

재현이 회의실 문을 열자 팀장이 말했다.

“오늘부터 민수 씨가 들어오면 돼요.”

민수는 재현이 늘 앉던 자리에 노트북을 펼치고 있었다. 옆에 의자가 하나 비어 있었다. 재현이 그쪽으로 몸을 돌리자 팀장이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재현 대리는 밀린 거 정리하고요.”

“제가 맡던 건도 오늘 얘기하는데요.”

“민수 씨가 전달해줄 겁니다.”

민수가 화면에서 눈을 떼고 재현을 봤다. “너도 얘기 들은 줄 알았는데.”

재현은 문손잡이를 놓지 않았다. “무슨 얘기?”

팀장이 복도를 한번 보고 목소리를 낮췄다. 재현에게 몰리는 상담을 나누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같은 사람이 계속 붙들고 있으면 휴가도 못 간다며, 민수가 회의에서부터 알아야 한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난 휴가에도 재현은 숙소에서 고객 사진을 열어봤다. 민수에게 보내달라고 한 사람도 자신이었다. 그래도 오늘 회의에서 빠지는 건 지금 처음 들었다.

“그럼 제 쪽에서 바뀌는 게 뭔지, 끝나고 알려주세요.”

재현은 문을 닫았다. 복도로 나오자 안에서 팀장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문 옆에 붙은 예약표를 봤다. 매주 같은 시간, 같은 회의였다.

자리로 돌아와 헤드셋을 썼다. 태림리빙에서 일한 지 육 년째였다. 책상이나 조명을 산 사람이 불편을 겪으면 그의 전화가 울렸다. 처음에는 제품 이름을 찾느라 대답이 늦었고, 이제는 고객이 말을 다 하기 전에 어느 부품인지 짐작할 때가 있었다.

화면에는 밀린 문의의 답변 초안이 준비돼 있었다. HQU는 회사가 쓰는 오르비스 AI의 업무 보조 서비스였다. 주문과 이전 상담을 찾아주고 답변과 기록의 초안을 만들었다. 재현은 주소가 바뀐 고객의 주문을 확인하고, 맞지 않는 안내 한 줄을 지운 뒤 답을 보냈다.

예전에는 이 정도 밀리면 점심이 늦어졌다. 요즘은 민수와 밖에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지난주에는 퇴근길에 대파를 사서 물러지기 전에 다 먹었다. 회의가 끝날 무렵이면 밀린 것들도 정리될 것 같았다.

후배가 헤드셋 한쪽을 귀에서 떼고 재현을 불렀다.

“어제 책상 문의하셨던 분이 대리님 찾으세요.”

재현이 손을 들었다. 그때 회의를 마치고 나온 팀장이 후배의 화면을 봤다.

“그 건은 민수 씨한테 연결해요. 앞으로 맡을 거니까.”

“제가 어제 통화해서—”

“기록 보면 알 수 있잖아요.”

재현의 손이 책상 위로 내려왔다. 어제 고객에게 약속한 건 사진을 보고 연락하겠다는 것이었다. 책상을 다 꺼내 조립하다가 연결 부품 하나가 없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다음 날부터 쓸 물건인데 전부 다시 포장해야 하느냐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민수가 옆자리에 앉았다. “어제 뭐까지 얘기했어?”

재현은 반품 안내까지는 했지만 고객이 부품만 받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민수가 고개를 끄덕이고 전화를 받았다. 재현에게는 민수의 대답만 들렸다.

“전체 교환 말고 빠진 것만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해달라는 말씀이시죠.”

재현은 열어놓은 고객 사진을 민수에게 보내주었다. 민수는 고맙다고 입 모양으로 말하고 통화를 이어갔다. 같은 책상도 연결 부품이 다를 수 있다며 사진을 한 장 더 부탁했다. 잠시 뒤 새 사진이 도착하자 물류 담당자에게 확인을 요청했다.

재현은 설명을 보태려다가 멈췄다. 민수가 물어본 것은 자신도 확인하려던 것이었다.

오후에 민수가 화면을 돌려 보여주었다. 맞는 부품이 있었고, 오늘 따로 보낼 수 있다는 답이었다. 도착일은 확답을 받지 못했다. 민수는 고객에게 그 점부터 말한 뒤, 전체 교환을 기다릴지 부품만 받을지 물었다.

통화를 끝낸 민수가 헤드셋을 벗었다.

“부품만 받겠대. 내일 꼭 된다고는 못 했고.”

“잘됐네.”

재현은 그렇게 말하고 자기 화면으로 돌아왔다. 더 할 말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민수가 놓친 것이 하나라도 있으면 자연스럽게 말을 이을 수 있었을 텐데, 지금 떠오르는 건 고객에게 했던 어제의 약속뿐이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민수가 물었다.

“오늘 국수? 네가 먼저 끝나겠는데.”

재현은 잠깐 웃었다. 아침부터 밀린 문의를 다 정리했다. 보고할 기록도 HQU가 만들어둔 초안을 확인하면 끝이었다. 정말 먼저 일어날 수 있었다.

팀장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이번 주 안에 인계자료를 정리해달라는 말이었다. 첨부된 표에는 재현이 맡던 일과 민수 이름이 나란히 있었다. 고객 사진을 보내준 일과는 규모가 달랐다.

재현은 팀장 자리로 갔다.

“이걸 전부 넘기는 겁니까?”

“한 번에 넘기겠다는 건 아니고요. 비어도 돌아가게 해두자는 거죠.”

“오늘 회의에서 빠지는 것도 여기 들어 있습니까?”

팀장이 표를 내려다봤다. “네. 회의부터 같이 알아야 하니까.”

같이 알아야 한다면서 자신은 밖에 있었다. 재현은 그 말을 하려다 뒤에서 기다리는 후배를 봤다. 후배는 결재받을 반품 건을 들고 있었다.

“제가 맡던 부분의 계획을 처음부터 볼 수 있을까요. 뭘 정리하라는 건지 알아야 해서요.”

팀장은 운영 담당자에게 요청해두겠다고 했다. 재현은 대답을 기다렸다가 자리로 돌아왔다. 민수는 가방을 책상에 올려놓고 있었다.

“나 오늘은 그냥 갈게.”

“집에서 먹게?”

“응.”

엘리베이터 앞에서 민수가 잡아준 문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물병을 두고 왔다고 했다. 자리로 돌아왔을 때 물병은 가방 옆 주머니에 꽂혀 있었다.

지하철에 앉아 휴대전화를 꺼냈다. 민수에게 아까는 피곤해서 그랬다고 보내려 했다. 대화창에는 지난주 먹은 국수 사진이 남아 있었다. 민수가 큰 그릇을 자기 쪽으로 당겨놓고 재현 것이 더 많다고 우기던 날이었다.

이 회사, 그만둘까.

처음으로 그 생각을 농담 없이 끝까지 해봤다. 재현은 입력창에 ‘나 오늘 그만둘까 싶더라’라고 썼다. 한참 뒤에도 전송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