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자 민수 대화창이 그대로 열려 있었다. 재현은 전송되지 않은 문장을 지웠다. 밤에는 누군가에게 말하면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회사에 도착하기도 전에 설명을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민수가 커피를 놓고 갔다.
“물병 찾았어?”
“응. 가방에 있더라.”
민수가 웃었다. 재현도 따라 웃었지만 어제 일부러 늦게 나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민수는 책상 부품을 받은 고객에게서 사진이 왔다며 화면을 보여주었다. 세워놓은 책상 위에 노트북이 있었다. 재현은 사진을 보고 나서 커피를 마셨다.
운영 담당자의 메일은 오전 늦게 왔다. 어제 요청한 인계 계획 중 재현에게 해당하는 부분이었다. 다른 직원들의 내용은 가려져 있었다. 재현은 자기 이름 아래 붙은 일을 읽었다. 어려운 상담의 답을 정하는 일, 회의에 들어가는 일, 후배가 막혔을 때 확인해주는 일이 나뉘어 있었다.
민수에게 간 고객 한 명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문서 위쪽의 만든 날짜가 눈에 들어왔다. 재현은 휴대전화 달력을 켰다. 어제에서 사흘을 거슬러 올라갔다. 자신이 아직 한 주치 반찬을 주문하고 다음 달 연차를 생각하던 날이었다.
그만둘까 하는 문장을 쓴 건 어젯밤이었다. 그것도 보내지 않았다.
재현은 날짜를 확대했다가 원래 크기로 돌렸다. 오래 쓰던 양식일 수도 있었다. 내용을 넣은 날과 파일을 만든 날이 다를 수 있었다. 그 정도는 자신도 업무를 하면서 여러 번 겪었다.
운영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맨 위 날짜가 양식 만든 날짜인가요?”
상대는 확인해보겠다고 했다. 재현은 기다리다 말을 보탰다.
“그날 제 이름이 이미 들어 있었는지만 알려주세요. 다른 분 자료는 안 봐도 됩니다.”
통화를 끊자 고객 전화가 들어왔다. 배송 주소를 바꿀 수 있느냐는 문의였다. 재현은 지금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확인하고 가능한 답을 했다. 전화를 내려놓았을 때는 무슨 제품이었는지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기록을 다시 읽고 나서야 기억났다.
점심때 민수가 일어나며 재현 쪽을 봤다. 재현은 운영 담당자의 답을 기다린다고 했다.
“폰으로 보면 되잖아.”
“그냥 먼저 가.”
민수는 더 권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뒤 사무실에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재현은 커피를 다 마셨는데도 종이컵을 버리지 않고 굴렸다.
한 시가 지나 답이 왔다. 최초로 저장된 계획에도 재현의 이름과 담당 업무가 있었다. 이번에 빈 양식에 이름만 채운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재현은 첨부된 자기 부분을 열었다. 이름을 잘못 봤을 가능성은 없었다.
팀장에게 메일을 전달하고 자리로 갔다.
“이때부터 정해놓으신 겁니까?”
팀장은 날짜를 보고 그렇다고 했다. 재현이 휴가 중에도 상담을 확인하는 일이 생겨, 대체할 사람을 정해두기로 했다는 말이었다.
“그럼 그때 저한테 말씀하셨어야죠.”
“정리하고 얘기하려고 했어요. 빠지는 게 아니라 부담을 나누는 겁니다.”
“회의에는 못 들어가고, 고객은 다른 사람한테 연결됐습니다.”
팀장은 잠깐 입을 다물었다. 뒤쪽에서 전화가 연달아 울렸다. 재현은 비켜서지 않았다.
“다음 주에 한번 앉아서 얘기합시다. 지금은 정리할 수 있는 부분부터 해주세요.”
“잘못된 연락처는 고치겠습니다. 업무를 전부 넘기는 데 동의했다고 적지는 말아주세요.”
팀장은 알겠다고 했다. 재현은 그 답을 들은 뒤에야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메일 회신에도 같은 내용을 짧게 남겼다. 보내고 나니 손끝이 뜨거웠다. 팀장 앞에서 한 말을 다시 글로 쓰는 일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민수가 늦은 점심으로 산 빵을 책상 위에 놓았다.
“아직 안 먹었지?”
재현은 빵보다 민수의 노트북을 먼저 봤다. 회의에서 받아온 문서가 열려 있었다.
“너는 언제 들었어?”
“뭘?”
“내 일 넘겨받는 거.”
민수의 손이 빵 봉지에서 떨어졌다.
“네 일 넘겨받는다고 들은 건 아니야.”
재현은 대답을 기다렸다. 민수는 자기 화면을 한번 보고 노트북을 닫았다.
“나한테 온 안내가 있어. 내일 아침에 그걸 보면서 얘기하자.”
재현은 빵 봉지를 뜯지 않았다. 자신에게는 인계자료를 고치라는 말이 왔고, 민수에게는 그보다 먼저 다른 안내가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