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예정자

재현은 사직서를 쓰기 전에 구직 사이트부터 열었다. 익숙한 직무 이름 아래 모르는 도구들이 적혀 있었다. 경력 육 년이면 지원할 수 있는 곳도 있었지만 급여가 지금보다 낮거나 출근 시간이 달랐다. 저장한 공고를 다시 읽고 두 개를 지웠다.

사용할 수 있는 저축은 생활비 반년 남짓이었다. 넉 달이 지나도 다음 일이 정해지지 않으면 지출과 지원 범위를 다시 조정하기로 했다. 날짜를 달력에 적었다. 여유가 생겼다는 기분으로 오래 미루지 않으려는 약속이었다.

회사에서는 맡기로 한 일이 계속 들어왔다. 재현이 짚은 조건이 안내에 반영됐고, 후배는 해결한 상담을 보여주며 어디가 괜찮았는지 물었다. 민수도 막히는 건을 혼자 끌어안지 않고 팀장과 재현에게 함께 물었다.

그대로 다닐 수도 있었다. 재현은 그 생각을 여러 번 했다. 그러고도 회사 메신저에 짧은 말을 쓸 때마다 문장이 다른 곳에 어떻게 남을지 먼저 읽었다. 쉬고 싶다는 말 대신 연차 날짜만 적었다. 답을 보내고 나면 필요 이상으로 읽음 표시를 확인했다.

그 습관이 언제 없어질지 알 수 없었다. 회사가 이번 일을 고쳤다는 사실과, 자신이 다시 편하게 일할 수 있는지는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았다.

재현은 정정이 끝난 다음 주에 사직서를 냈다. 팀장은 서류를 읽고 잔류안을 다시 설명했다. 재현은 실제로 그 일을 해봤고, 조건이 나아진 것도 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나가겠다는 거죠?”

“네.”

팀장이 서류를 책상 위에 놓았다.

“결국 그때도 이런 생각이 있었던 것 아닙니까.”

재현은 서류를 당기지 않고 팀장을 봤다.

“그때 제 뜻을 잘못 적은 건 이미 고치셨습니다. 이건 지금 제가 결정한 겁니다.”

팀장은 더 말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마지막 근무일과 인계 기간을 정했다. 삼 주 동안 정리하고 나가기로 했다. 재현은 그 날짜를 확인한 뒤 민수에게 직접 말했다.

민수는 놀란 얼굴로 재현을 봤다.

“정말?”

“응. 말은 내가 먼저 하고 싶었어.”

민수는 잠시 손에 들고 있던 펜을 돌렸다.

“다음 데는 정했어?”

“아직.”

“괜찮겠어?”

재현은 괜찮다고 바로 답하지 않았다. 계산해둔 생활비와 지원 중인 공고를 생각했다.

“준비하면서 해보려고.”

인계할 때는 고객 이름과 사적인 대화를 개인 파일로 가져가지 않았다. 회사 안의 상담 기록을 보며 어떤 말을 더 들어야 했는지 정리했다. 깨진 조명 건에는 최초 요청만 보고 움직이지 말라는 한 줄을 붙였다. 민수는 그 문장을 읽고 다른 상담 사례를 덧붙였다.

후배가 ‘판단이 어려우면 담당자에게 확인’이라는 문장을 가리켰다.

“대리님 나가시면 누구한테 확인해요?”

재현은 그 말을 읽었다. 누구나 알 것 같아서 이름을 안 쓴 문장이었다. 팀장이 최종 판단하고, 민수가 현재 고객과 합의한 내용을 확인한다는 식으로 고쳤다. 자신에게 전화하라는 말은 넣지 않았다.

마지막 주에 민수가 작은 오류를 잡았다. 재현이 오래 쓰던 안내 중 지금은 달라진 부분이었다. 재현은 민수가 확인한 근거를 읽고 고맙다고 했다. 자기 없이도 고쳐질 일이었다.

퇴사 전날 둘은 회사 앞에서 커피를 마셨다. 민수가 앞으로도 밥은 먹자고 했다.

“먹자. 대신 그 자리에서 상담 물어보기 없기다.”

“안 물어봐.”

“나도 먼저 안 물어볼게.”

민수가 웃었다. 재현도 웃었다. 둘 다 지킬 수 있을지 모르는 약속이었지만, 적어도 어떤 약속인지는 같았다.

마지막 날 장비를 반납하고 건물을 나왔을 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재현은 걸음을 멈추고 화면을 봤다. 통신사 광고였다. 잠깐 허탈해서 웃었다가 주머니에 넣었다.

퇴사 후 첫 월요일에는 평소 시간에 눈이 떠졌다. 출근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됐지만 잠이 더 오지는 않았다. 재현은 빨래를 돌리고 이력서를 고쳤다. 남은 시간이 많다고 지원서를 쉽게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 달 동안 답이 없는 곳이 있었다. 면접까지 갔지만 근무 조건이 맞지 않는 곳도 있었다. 재현은 거절 메일을 읽은 날 장바구니에서 필요 없는 물건을 지웠다. 생활비 기록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보면 회사에 남았어야 했나 생각했다. 그 생각 때문에 이미 내린 결정을 멋진 이야기로 바꾸지는 않았다.

두 달째 면접에서는 담당 업무가 바뀔 때 누구와 이야기하는지 물었다. 상담 기록이 직원 평가에 어떻게 쓰이는지도 물었다. 면접관은 아는 범위에서 답했고 확인이 필요한 것은 따로 알려주겠다고 했다. 재현은 그 말을 적었다. 합격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민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토요일에 전에 가던 국숫집에서 보자는 말이었다. 재현은 메시지 아래에 업무 질문이 더 오는지 잠깐 기다렸다.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좋아. 이번엔 네가 사.’

민수가 알겠다고 답했다. 재현은 휴대전화를 넣고 채소가게에 들렀다. 대파 한 단을 샀다. 예전처럼 한 주 안에 전부 먹을 생각으로 사지는 않았다.

집에서 대파를 씻어 일부는 잘라 냉동실에 넣었다. 오늘 쓸 만큼만 도마 위에 남겼다. 냄비에 물이 끓자 달걀을 풀었다.

휴대전화는 식탁에 놓여 있었다. 재현은 국을 그릇에 덜고 자리에 앉았다. 화면을 켜기 전에 한 숟가락을 떠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