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자리

운영 담당자가 보낸 수정본에는 정정 날짜와 이유가 붙어 있었다. 재현은 자기 의견이라고 쓰였던 부분부터 읽었다. 휴가 대화를 역할 축소 동의로 사용할 수 없고, 확대는 팀장의 운영 판단이었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옛 기록으로 가는 링크 옆에도 정정본을 확인하라는 표시가 있었다.

재현은 새로 받은 담당표를 열었다. 추가로 넘기려던 항목이 보류돼 있었다. 지금 민수가 맡고 있는 상담은 그대로였고, 어려운 판단은 역할 협의가 끝날 때까지 팀장이 책임지고 확인하도록 적혀 있었다. 재현과 민수 모두 필요한 회의 자료를 받게 됐다.

운영 담당자는 관련자에게 안내를 보냈으니 확인을 마쳐달라고 했다. 재현은 전달 목록의 맨 아래를 봤다. 처음 성과 보고를 받은 한 부서의 확인이 비어 있었다.

“이쪽도 바뀐 걸 봤나요?”

“메일은 보냈습니다.”

“지금도 옛 보고를 쓰고 있을 수 있잖아요.”

상대는 확인해보겠다고 했다. 재현은 완료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당장 누구를 더 만나 따질 생각은 없었다. 빈칸이 채워질 때까지 업무를 하기로 했다.

오후에는 민수와 같은 회의에 들어갔다. 재현이 문을 열자 민수가 옆자리에 놓아둔 가방을 치웠다. 재현은 그 자리에 앉았다. 처음 밀려났던 날의 자리와는 달랐지만 자기 앞에도 자료가 놓였다.

고객에게 안내할 범위를 논의하다가 재현이 말을 시작했다. 민수가 먼저 확인한 내용이 있다고 했다. 재현은 입을 다물고 들었다. 민수의 설명이 끝난 뒤에야 빠진 상황 하나를 물었다.

팀장이 둘의 의견을 듣고 최종 안내를 정했다. 회의는 예상보다 일찍 끝났다. 재현은 끝난 화면을 한 번 더 보고 노트북을 닫았다. 자기 말이 쓰였는지 확인하려고 회의 뒤 보고서를 다시 열 필요가 없었다.

자리로 돌아오자 마지막 부서의 회신이 도착해 있었다. 기존 보고를 수정본으로 교체했고, 다음 판단에 이전 문장을 인용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재현은 회신을 읽고 정정 확인에 답했다. 자신이 요구한 범위에서 바뀐 것을 확인했다는 말이었다.

그날 실장이 재현을 불렀다. 앞으로 어려운 상담의 판단과 후배 교육을 맡고, 필요한 안건에는 회의에 참여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모든 고객을 다시 가져오라는 뜻은 아니었다. 민수가 맡은 일은 유지됐다.

“이렇게 하면 계속할 수 있겠어요?”

재현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돌아오고 싶어 했던 일들이었다. 막상 그 말을 듣자 반가움과 피곤함이 같이 왔다.

“며칠 해보고 말씀드려도 될까요?”

실장은 그러라고 했다. 재현은 말뿐인 제안인지 확인할 기회가 생겼다.

다음 며칠 동안 재현은 실제로 그 일을 했다. 후배가 자기 판단을 설명하면 끝까지 듣고 부족한 부분을 물었다. 민수에게 간 상담을 가져오지 않았고, 필요한 자리에서는 자기 의견을 냈다. 한 번은 민수의 판단이 맞았고, 다른 날에는 재현이 놓치기 쉬운 조건을 짚었다. 퇴근도 대체로 늦지 않았다.

금요일 저녁 민수가 국수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재현은 가방을 챙겨 함께 나갔다. 식당에서 민수는 다음 주말에 집 계약을 보러 간다고 했다. 재현은 보증금을 물으려다가 어디로 옮길 생각이냐고 바꿔 물었다. 둘은 회사 밖의 이야기를 조금 했다.

계산할 때 민수가 자기 몫을 보내겠다고 했다.

“오늘은 내가 살게.”

“다음에 내가 사지.”

재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이 있다는 말이 반가웠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무엇이든 말할 수 있다는 뜻으로 듣지는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재현은 통장 앱을 열었다. 퇴사하면 얼마 동안 버틸 수 있는지 계산했다. 빠뜨린 고정 지출을 하나 넣자 남은 달이 줄었다. 실장이 제안한 역할을 적어둔 메모도 옆에 펼쳤다.

남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재현은 계산기를 닫지 않고, 다음 달 월세를 한 번 더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