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티아 첫 광고에는 운동화가 나왔다.
서진은 다음 게시물로 넘겼다. 강아지 영상, 음식 사진, 지하철에서 찍은 짧은 영상. 조금 전 유리의 거실을 보여 줬던 침구 광고는 없었다.
현관에서는 유리가 신발을 신는 소리가 났다.
“택시 얼마나 남았어?”
서진은 광고를 하나 더 넘기고 나서야 앱을 바꿨다.
“2분.”
“그럼 내려가자.”
유리는 현관문을 열었다. 복도 불이 켜졌다. 서진은 가방을 들려다가 건조대 쪽으로 갔다. 맨 끝에 널린 흰 수건을 잡았다.
“이것만 소파에 걸어 보면 안 돼?”
“옮기지 않기로 했잖아.”
“안 나오니까 더 모르겠어. 지금 끝난 건지, 다른 사진을 못 찾은 건지.”
“그걸 여기서 다 알아내고 가게?”
서진은 수건을 놓았다. 전화기는 그대로 쥐고 있었다.
“다음 방에서도 이러면 어떡해.”
유리가 신발을 신은 채 문턱 안으로 들어왔다.
“나도 몰라. 그래도 지금은 나가자고.”
전화기 위로 택시 도착 알림이 떴다. 서진은 알림을 위로 밀었다. 다시 광고 사진이 보였다.
유리가 손을 내밀었다.
“줘.”
“이것만 넘겨 보고.”
“내 전화기 달라고.”
유리의 목소리가 커졌다. 서진이 고개를 들었다. 둘 사이에 내민 손이 그대로 있었다.
“너는 옛날부터 그래. 내가 그만하라고 하면, 네가 괜찮아질 때까지 한 번만 더 하재.”
“지금 이게 그냥 내가 예민해서 그러는 거야? 너도 봤잖아.”
“봤어. 나도 봤고, 나도 무섭다고 했어. 그래서 나가자고 했잖아!”
유리가 마지막 말을 높였다. 복도로 목소리가 흘러나갔다. 유리는 열린 문을 한 번 보고도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네가 무서우면 나는 안 무서운 줄 알아? 나도 여기 있기 싫다고!”
서진은 전화기를 내밀었다. 유리가 받아 쥐자 손바닥에 땀이 남았다. 서진은 손을 외투에 문질렀다.
“나도 너 있어서 버티는 거야.”
“그럼 내 말도 들어야지.”
유리의 말이 빨라졌다.
“내가 임신했다고 했을 때도 그랬잖아. 축하한다는 말보다 네 광고부터 보여 줬어. 내가 어떤 마음으로 말했는지는 안 궁금했어?”
“그건 미안하다고 했잖아.”
말이 튀어나오자마자 서진은 유리의 얼굴을 봤다. 유리가 웃는 것처럼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그러니까 끝난 일이야?”
“그런 뜻이 아니라…….”
“너한테 먼저 말하고 싶어서 불렀어. 나도 겁나니까, 같이 좋아해 주면 좀 괜찮을 것 같아서. 그런데 너는 내가 아기를 가졌다는 말까지 네 광고가 이상하다는 증거로 쓰잖아.”
서진은 입을 열었다. 유리가 고개를 저었다.
전화기가 울렸다. 택시 기사였다. 유리는 화면을 내려다보다 전화를 받았다.
“죄송해요. 지금 내려갈게요.”
유리는 전화를 끊고 열린 문 쪽으로 돌아섰다. 서진이 뒤따라 다가오자 다시 입을 열었다.
“예전에도 내가 답장 늦으면 화났냐고 계속 물었잖아. 아니라고 해도 뭐가 서운한지 말하라고 하고. 결국 나도 화나면, 그제야 거봐, 화났네.”
서진은 그 말을 기억했다. 괜찮다는 답을 받고도 전화했던 밤들이 있었다. 유리는 처음엔 웃으며 아니라고 했고, 나중에는 피곤하니 끊자고 했다.
“그건 네가 나 때문에 참는 것 같아서—”
“지금도 내가 말한 이유는 안 믿잖아.”
유리는 물병을 가방에 밀어 넣었다. 입구가 좁아 한 번 걸렸다. 다시 넣는 손이 떨렸다.
“너 그러는 거 정말 싫어.”
서진은 숨을 들이마셨다. 이번에는 입을 열지 못했다.
“나 네 친구야. 그런데 너랑 있으면 내 기분은 자꾸 없어져.”
유리는 눈가를 손등으로 눌렀다. 눈물을 닦은 손으로 전화기를 가방에 넣었다.
복도 불이 꺼졌다. 현관문 안쪽의 불빛만 유리의 신발 앞에 길게 남았다.
“그럼 나 오지 말았어야 했네.”
서진이 작게 말했다.
유리의 손이 멎었다.
“또 내가 아니라고 달래 줘야 돼?”
서진은 유리를 봤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자기가 무엇을 기다렸는지 알았다. 그건 아니라고, 와 줘서 좋다고 말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리가 가방 끈을 어깨에 올렸다.
“나 이런 식으로 계속은 못 지내.”
서진은 현관에 놓인 자기 가방을 들었다. 몸을 움직이자 복도 불이 다시 켜졌다. 유리의 눈가가 붉었다.
“미안해. 방금 말도.”
유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서진은 운동화를 신었다. 한쪽 끈이 발밑에 깔려 있었다. 발을 들어 빼고 매듭을 묶었다. 전화기는 유리의 가방 안에 있었다. 화면을 볼 수 없자 거실 구석이 다시 신경 쓰였다. 서진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일어났다.
“같이 가도 돼?”
유리는 한동안 서진을 보았다.
“가자. 근데 지금은 말 걸지 마.”
“응.”
둘이 나오자 유리가 문을 잠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층수가 바뀌는 숫자만 봤다. 서진은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해명할 말이 떠오를 때마다 유리가 고개를 젓던 얼굴이 먼저 생각났다.
택시에 탄 유리는 창가로 붙어 앉았다. 서진은 반대쪽 문을 닫고 무릎 위에 가방을 올렸다.
차가 출발했다. 이제 혼자는 아니었다. 그런데 서진은 유리의 손이 닿지 않는 쪽에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