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방에 들어서자 유리는 문 쪽 침대에 가방을 놓았다. 서진은 나란히 놓인 다른 침대 끝에 앉았다. 함께 도망쳐 왔는데, 유리는 한 번도 이쪽을 보지 않았다.
유리가 가방에서 충전선을 꺼내 책상 옆 콘센트에 꽂았다. 전화기를 연결한 뒤 욕실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욕실에서 물소리가 났다. 서진은 내일도 연락해도 되느냐고 묻고 싶었다.
전화기 화면이 밝아졌다. 서진은 책상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가 멈췄다. 충전선 끝에 놓인 것은 유리의 전화기였다.
유리는 말 걸지 말라고 했다. 서진은 외투를 걸고 갈아입을 옷만 꺼냈다. 전화기에도 욕실 문에도 손대지 않았다.
유리는 머리를 닦던 수건을 무릎에 놓고 자기 침대에 앉았다. 그제야 서진은 씻으러 들어갔다.
방으로 나오자 유리가 창문 쪽을 보고 있었다. 길이가 같은 커튼 두 장 사이로 맞은편 간판 불빛이 들어왔다. 서진은 자기 침대에 앉았다.
“아까 네가 싫다고 한 거, 생각했어.”
유리는 고개만 돌렸다.
“네가 임신했다고 말했을 때, 난 내 광고가 맞았다는 생각부터 했어. 오늘은 네가 그만 보고 나가자는데 전화기도 안 돌려줬고. 미안해.”
유리는 커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기다렸다. 사과가 들렸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토요일에 집에 가면서 내가 괜히 말했나 했어.”
유리가 말했다.
“기뻐해 달라는 말을 내가 해야 한다는 게 너무 싫더라.”
“오늘 밥 먹을 때는 내 얘기도 물어봐 줬잖아. 그래서 괜찮아진 줄 알았어. 그런데 내가 나가자고 하니까 너는 또 수건부터 옮기려고 하더라.”
“나도 네가 무서워하는 거 싫어. 혼자 두기도 싫고. 근데 내가 안 된다고 하면, 그 말도 좀 믿어 줘.”
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졌느냐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유리가 이불 끝을 만지는 동안 기다렸다.
“지금 다 풀렸다고 말 안 해도 돼.”
서진이 말했다. 유리는 이불에서 손을 떼고 서진을 봤다.
유리는 무릎에 놓인 수건을 집었다. 눈가를 누른 뒤 한동안 내려놓지 않았다. 서진은 손가락으로 티셔츠 끝을 접었다 폈다.
“옆에 가도 돼?”
유리가 수건을 내렸다. 자기 옆의 이불을 손바닥으로 쓸어 펴 주었다.
서진은 건너가 앉았다. 두 사람은 나란히 커튼을 보았다. 간판 불빛이 꺼졌다 켜질 때마다 좁은 틈이 붉어졌다.
“너 오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은 안 했어.”
유리가 먼저 말했다.
서진의 눈이 뜨거워졌다. 입술을 깨물었지만 턱이 떨렸다.
“내가 오지 말았어야 했다고 하면, 네가 아니라고 해 줄 줄 알았어.”
“나도 아까 너무 크게 말했어.”
“그래도 돼. 내가 안 들었잖아.”
유리가 코로 숨을 길게 뱉었다. 수건을 침대 위에 내려놓고 서진의 손등을 건드렸다. 서진이 손을 펴자 유리가 손가락을 끼웠다.
서진은 포개진 손을 무릎 위에 놓았다. 한동안 그 손만 보다가 친구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무서웠어.”
“나도.”
이번에는 서진이 다음 말을 기다렸다. 유리는 더 말하지 않고 서진의 어깨에 자기 머리를 기댔다.
커튼 틈에서 빛이 다시 깜빡였다. 유리가 머리를 들었다.
“저거부터 막자. 눈 아파.”
서진이 일어나 커튼 끝을 겹쳐 잡았다. 유리는 머리에서 토끼 집게를 빼 가운데에 물렸다. 한쪽 귀가 없는 갈색 얼굴이 가슴 높이에 매달렸다. 빛이 사라졌다.
유리가 집게에서 손을 뗐다. 서진도 잡고 있던 천을 놓았다. 틈은 벌어지지 않았다. 둘은 전화기를 돌아보지 않고 침대로 갔다.
각자 침대에 눕고 천장 불을 껐다. 침대 사이 벽등만 남았다. 서진은 친구가 있는 쪽으로 돌아누웠다. 유리도 이쪽을 보고 있었다.
“침대 좀 붙일까?”
유리가 물었다.
“같이 있어도 너무 멀다.”
서진은 일어나 자기 침대 발치를 조금 들어 안쪽으로 밀었다. 유리가 간격을 봐 주었다. 두 침대 사이에 손바닥 하나 너비만 남겼다.
다시 누워 손을 잡았을 때는 팔을 길게 뻗지 않아도 됐다. 유리는 다른 손으로 이불을 턱 아래까지 끌어올렸다.
책상 위 전화기가 한 번 울렸다.
서진이 눈을 떴다. 유리도 그쪽을 봤다.
“아침에 보려고.”
“응.”
서진은 잡은 손에 힘을 풀었다. 유리가 먼저 손가락을 다시 감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