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 나 혼자 있을 때 했거든.”
화요일 저녁, 서진은 귤을 까던 유리에게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집 정리를 도우러 온 유리는 택배 상자를 접어 벽 옆에 세운 뒤, 가져온 귤 봉지를 탁자에 풀어 놓은 참이었다.
“어제 보낸 노트북 광고 말고, 집에 와서 또 뜬 거야.”
화면에는 저장해 둔 스피커 광고가 있었다. ‘혼자 돌아온 집에서 “나 왔어”라고 말하는 당신에게.’ 유리가 문구를 다 읽을 때까지 서진은 손을 거두지 않았다.
“집에 들어가면서 나 왔다고 했어. 조금 있다가 저게 나왔고.”
“그 말은 다른 사람들도 많이 하잖아. 우연일 수도 있지.”
“그랬으면 좋겠어. 그래서 한 번만 같이 해 줘. 우리 둘 다 검색한 적 없는 물건 얘기만 해 보는 거야.”
“그 물건 광고가 나오는지 보자고?”
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는 탁자 한쪽으로 밀어 둔 잡지를 펼쳤다. 비 오는 날 놀러 가기 좋은 곳을 소개하는 기사에 노란 우비를 입은 아이가 서 있었다.
“어린이 우비는 어때? 난 검색한 적 없어.”
“나도. 사진도 찍지 말자. 말만 했는데 뜨는지 보게.”
유리는 자기 휴대전화의 전원을 끄고 침실 서랍 위에 두었다. 돌아와서는 서진의 전화기를 가리켰다.
“오늘은 얘만 듣는 걸로.”
서진은 인스를 닫고 화면을 껐다. 탁자 가운데 놓인 검은 유리에 두 사람의 얼굴과 천장 등이 비쳤다.
“노란 어린이 우비가 필요해.”
서진이 또박또박 말하자 유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전화기한테 주문해? 나한테 얘기해.”
유리가 귤 한 쪽을 건넸다. 서진은 그것을 받아 들고 유리를 봤다. 누군가 듣는지 시험하면서 정작 앞에 앉은 친구의 얼굴은 보지 않고 있었다.
둘은 아이에게 선물할 우비를 고르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유리는 무릎까지 내려와야 비를 안 맞겠다고 했고, 서진은 아이가 밟고 넘어지겠다고 했다. 모자 끈은 있는 게 좋을지 말하다 둘 다 아이 옷을 사 본 적이 없다는 데서 막혔다.
서진은 무심코 전화기를 들었다. 어린이 우비가 어떻게 생겼는지 찾아보려다 손을 멈췄다. 유리가 잡지를 손가락으로 톡 쳤다.
“여기 있잖아. 검색 안 하기로 했고.”
서진은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입안의 귤이 생각보다 셨다. 유리가 제 표정을 보고 웃자 이번에는 같이 웃었다.
5분쯤 뒤, 서진은 메모장에 날짜와 노란 어린이 우비를 적고 인스를 열었다. 운동화 광고를 넘긴 뒤에도 손가락은 계속 화면을 밀었다.
“지금 나올 때까지 보려고?”
유리가 까 놓은 귤을 서진 앞으로 밀었다. 빈 봉지 옆에는 아직 접지 않은 택배 상자가 남아 있었다.
서진은 다음 게시물의 윗부분만 보다가 앱을 닫았다. 두 사람은 남은 상자를 접었다. 유리는 돌아갈 때 침실에 둔 전화기를 가져와 켰다. 잡지는 귤 봉지 밑에 남았다.
수요일 점심, 서진은 동료들이 나갈 때 우비 광고만 확인하고 따라가겠다고 했다. 운동화 다음에는 여행 가방이 나왔다. 캡처를 유리에게 보낸 뒤 다음 광고를 기다렸다.
돌아온 동료가 식사는 했느냐고 물었다. 서진은 그제야 시계를 봤다. 책상 위에는 아침에 마시다 만 커피만 있었다.
유리에게서 답이 왔다.
‘우비는?’
‘없어.’
‘그럼 일단 귤 먹어.’
서진은 가방에서 귤을 하나 꺼냈다. 한 손으로 껍질을 까려다 포기하고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어제는 유리가 눈앞에 귤을 내밀어야 전화기를 놓았다. 오늘은 문자까지 받고서야 내려놓았다.
목요일 퇴근길에도 우비 광고는 없었다. 내릴 정류장 안내가 나오자 서진은 보던 광고를 끝까지 넘기지 않고 앱을 닫았다. 어젯밤에는 놓친 광고가 있을까 봐 침대에서도 확인했었다. 오늘은 집 정리를 끝내고 자고 싶었다.
집에 도착해서는 전화기를 소파에 두었다. 짧은 커튼이 바닥에서 얼마나 뜨는지 보려고 원형 탁자를 옆으로 밀었다. 탁자 다리가 작은 화분 받침에 걸렸다.
화분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흙 사이로 깨진 조각이 벌어져 있었다. 유리가 이사 선물로 준 것이었다.
서진은 식물을 비닐 위로 옮겼다. 줄기는 꺾이지 않았다. 조각을 맞춰 한 손으로 붙들고, 다른 손으로 투명테이프를 길게 붙였다. 손을 떼자 틈이 벌어져 짧은 조각을 비스듬히 덧댔다. 두 테이프가 만나는 곳에 작은 공기방울이 남았다.
식물을 다시 넣자 화분은 혼자 서 있었다. 서진은 잠깐 그대로 지켜보다 낮은 책장 위에 올렸다. 맨 밑까지 손가락으로 눌러 보아도 더 벌어지지 않았다.
유리에게 보여 주려고 소파에서 전화기를 집었다가 멈췄다. 깨진 화분을 보면 새것부터 사겠다고 할 것 같았다. 만나서 식물은 괜찮다고 먼저 말하기로 했다. 카메라를 여는 대신 전화기를 소파에 도로 놓았다.
흙 묻은 손을 씻고 돌아와 탁자를 제자리로 옮겼다. 창가 의자에는 회색 후드가 걸려 있었다. 거울에 비친 거실은 여전히 어수선했다. 방 정리가 끝나면 사진을 찍어 친구들에게 보여 주려던 생각도 미뤘다. 이사 온 뒤 아직 이 방을 찍은 적은 없었다.
금요일 아침, 서진은 유리에게 이제 그만 확인하겠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답을 기다리며 인스 아이콘을 누르려다, 전화기를 가방에 넣었다.
탁자에 손을 짚자 다리가 흔들렸다. 서진은 귤 봉지 밑의 잡지를 접어 그 아래에 끼웠다. 노란 우비를 입은 아이의 얼굴이 종이 안으로 접혔다.
탁자는 더 흔들리지 않았다. 서진은 그 위에서 아침을 먹고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