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 끝 창문 앞에 서서 서진은 유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손에 땀이 차서 전화기가 미끄러웠다.
“지금 가도 돼?”
“응. 나 막 들어왔어. 너 목소리가 왜 그래?”
“집에 돌아와서 다시 봤어. 전화기 꺼 놓고 바꾼 것도 나와. 무서워서 지금 복도로 나왔어.”
“화분에 천 씌웠거든. 그게 똑같이 나와.”
“의자를 한 번만 더 옮겨 볼까?”
유리가 통화로 듣고 있는 동안 바꿔 보면 혼자 잘못 본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 것 같았다.
“더 확인하려고 들어가지는 마. 일단 와.”
서진은 자기 발을 봤다. 양말만 신고 있었다. 신발은 현관 안에 있었다. 가방과 지갑도 가져와야 했다.
“짐만 챙길게.”
“통화 켜 놓고. 내가 듣고 있을게.”
서진은 방으로 돌아갔다. 전화기를 신발장 위에 올리고 소리가 크게 들리도록 했다. 유리가 컵을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 서진은 그 소리에 맞춰 숨을 쉬었다.
탁자 위 식탁보는 아직 솟아 있었다. 서진은 곁을 지나 침실에서 가방을 가져왔다. 갈아입을 티셔츠와 속옷을 넣고 지갑, 열쇠를 챙겼다. 지퍼가 옷자락에 걸렸다. 억지로 당기지 않고 소매를 조금 남겨 둔 채 멈췄다.
“유리야.”
“응.”
“토요일에 미안했어. 네가 임신했다고 말하는데, 나는 광고 얘기만 했어.”
서진은 가방을 어깨에 걸며 말했다.
“네가 어떤 마음인지부터 물었어야 했는데.”
“나도 그날은 좀 서운했어.”
서진은 신발장 쪽으로 걸었다. 유리의 다음 말이 나올 때까지 끼어들지 않았다.
“오늘은 와서 밥부터 먹자. 그 얘기는 얼굴 보고 해.”
“응.”
창가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조금만 돌려 놓고 가면 다음에 비교할 수 있었다. 서진은 발을 멈췄다.
“서진아, 짐 챙겼어?”
전화기에서 유리의 목소리가 났다. 서진은 의자 대신 신발장 앞으로 갔다.
“응. 이제 나가.”
“전화기는 여기 두고 갈게. 버스로 30분쯤 걸려.”
“그럼 도착해서 벨 눌러. 내가 열어 줄게.”
서진은 통화를 끝내고 전원을 껐다. 신발장 위에 전화기를 엎었다. 열쇠는 가방 바깥 주머니에, 지갑은 안쪽에 있었다. 신발을 신은 뒤 손으로 두 군데를 짚었다.
현관문을 닫았다. 손잡이를 한 번 당겨 잠긴 것을 확인했다. 전화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더 보지 않기로 해서 손이 허전했다.
버스 앞자리의 사람이 인스티아를 넘겼다. 서진은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 채 여섯 정거장을 갔다. 유리의 집 계단을 올라 초인종을 누르자 안에서 발소리가 났다.
유리가 문을 열었다. 집에서 입는 헐렁한 옷 차림이었다. 서진은 얼굴을 보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유리가 먼저 가방 끈을 받아 주려다, 서진의 손이 굳어 있는 것을 보고 비켜섰다.
“들어와. 밥 아직 따뜻해.”
서진은 가방을 놓지 않은 채 신발을 벗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끝까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