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로 끝나지 않는 일

재현은 퇴근 전에 잠깐 얘기하자고 민수에게 물었다. 민수는 오늘 약속이 있다며 지금 휴게실에서 말하자고 했다. 재현은 가방을 챙기지 않고 따라갔다.

휴게실에는 둘뿐이었다. 민수는 자판기에서 물을 뽑았다. 재현은 맞은편에 서서 무슨 말부터 해야 변명으로 들리지 않을지 생각했다. 그러다 준비한 순서를 버렸다.

“네가 나한테 말 안 하고 대화를 넘겼을 거라고 의심했어.”

민수는 뚜껑을 열다 멈췄다.

“내 자리에서 네가 일하고 있으니까, 네가 알고 시작한 일이라고 생각했어. 보여주기 싫다는 말을 듣고도 더 의심했고.”

“그래서 내가 다 보여줬으면 믿었을 거야?”

재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다른 대화가 더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자신이 모르는 것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민수의 잘못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랬을지 모르겠어.”

민수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난 그게 싫었어. 내가 그 일 하고 싶다고 한 순간부터 네가 나를 다르게 보는 거.”

“미안해. 하고 싶었던 건 네 잘못이 아니야.”

민수는 빈 뚜껑을 손바닥에서 굴렸다.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다. 재현은 더 말해서 그 답을 받아내고 싶어지는 마음을 눌렀다.

“오늘 약속 있다며. 붙잡아서 미안해.”

민수가 물병을 닫았다. 먼저 휴게실을 나가면서 문을 잡아주었다. 재현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놓았다. 둘은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다음 날 운영 담당자가 정정 초안을 보냈다. 원문과 요약이 다르고, 재현이 현재 이관에 반대한다는 내용이 붙어 있었다. 그런데 이전에 본인도 원했다고 적은 문장은 그대로였다. 아래쪽에 반대 의견이 접수됐다고 덧붙인 형태였다.

재현은 두 부분을 번갈아 읽었다. 이대로라면 원했다가 마음이 바뀐 사람으로 남았다.

그는 팀장과 운영 담당자에게 다시 면담을 요청했다. 이번에는 상담팀을 맡은 실장도 참석하기로 했다. 재현은 민수에게 참석자가 늘었다고 알리고, 전에 함께 확인한 대화 구간을 그 자리에서도 보여줘도 되는지 물었다. 민수는 같은 구간을 정정 목적으로 보여주는 데 동의했다. 면담에서 재현은 준비한 화면을 띄우고 두 문장을 나란히 보여주었다.

“이렇게 남기면 제가 처음에는 원한 일이 됩니다.”

실장이 물었다. “처음 계획부터 취소해달라는 겁니까?”

“휴가 때 저한테만 연락이 가는 문제는 고쳐야 합니다. 민수 씨가 맡는 일도 필요하고요. 그런데 그걸 제가 제 역할을 줄여달라고 한 일로 쓰면 안 됩니다.”

재현은 요약 옆의 휴가 원문을 짚었다. 자신의 사적인 농담을 실장 앞에서 설명하는 일이 불편했다. 그래도 어느 말이 어떤 뜻이었는지 자신이 말하지 않으면 문서의 한 줄이 대신 말하게 됐다.

팀장이 화면을 내려다봤다.

“의견을 잘못 해석한 건 인정합니다.”

“해석을 잘못한 사람도 적어주십시오.”

재현이 말하자 방 안이 조용해졌다. 실장은 팀장을 봤다. 재현은 목 안쪽이 마르는 것을 느끼면서도 말을 줄이지 않았다.

“제가 원한 게 아니라, 팀장님이 운영상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승인하신 겁니다.”

팀장은 잠깐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승인 사유를 그렇게 고치겠다고 했다. 원래 기록은 남기되 정정 내용을 연결하고, 이전 문구를 다시 근거로 사용하지 않도록 표시하기로 했다.

재현은 지난번 성과표도 열었다. 자기가 덜 받은 상담과 민수가 잘 처리한 상담이 같은 비교표에 있었다. 민수의 성과를 지워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 표만으로 재현의 판단이 필요 없어졌다고 결론 내릴 수 없다는 설명을 요청했다.

실장은 이미 보고를 받은 사람들에게도 수정 내용을 보내라고 했다. 운영 담당자는 목록을 확인하겠다고 답했다.

회의실을 나서기 전 재현은 하나 더 물었다.

“예정된 추가 이관은요?”

실장은 역할을 다시 정할 때까지 멈추라고 했다. 팀장이 알겠다고 답했다. 재현은 그 말을 듣고도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이 회의실에서 빠졌을 때처럼, 결정은 실제 명단과 업무에 나타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