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현은 그 문장이 보이는 노트북을 들고 팀장 자리로 갔다. 노트북 화면을 돌려 보여주었다.
“이건 누가 썼습니까?”
팀장이 문장을 읽었다. “검토자료에 있던 내용입니다.”
“제가 한 말로 돼 있는데요.”
“부담을 줄이고 싶다는 얘기는 했잖아요. 휴가 때도 전화 받는다고.”
재현은 지난번 면담을 떠올렸다. 휴가 중에는 다른 사람이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연락하지 않아도 되게 하자는 말이었다. 회의에서 빼고 맡을 일을 줄여달라고 말한 적은 없었다.
“휴가 때 전화 안 받는 것하고 지금 제 일을 없애는 건 다릅니다.”
“없앤다고 하지 않았어요.”
팀장의 목소리가 커지자 옆자리 후배가 고개를 들었다. 재현은 노트북을 자기 쪽으로 돌렸다. 화면을 닫지는 않았다.
“여기에 제가 원했다고 쓰신 근거를 보고 싶습니다.”
팀장은 운영 담당자가 자료를 묶어준 것이라며 확인해보겠다고 했다. 재현은 방금 문장을 인용해 메일로도 질문을 남겼다. 면담에서 말한 휴가 중 연락 문제만으로 이 문장을 쓴 것인지 물었다.
답을 기다리는 동안 민수에게 말을 걸려다가 멈췄다. 자신이 쉬고 싶다고 말할 때 옆에 있었던 사람이었다. 어디서부터 얼마나 이야기했는지 물으면 다시 노트북 덮개에 손을 얹었던 아침으로 돌아갈 것 같았다.
재현은 회사 메신저에서 ‘쉬고 싶다’를 검색했다. 민수와 나눈 대화가 나왔다. 행사 문의 대응 기준을 정리한 문서 링크 아래였다.
‘이번 건 끝나면 좀 쉬고 싶다.’
바로 다음 말은 연차에 관한 것이었다. 하루를 더 붙일 수 있는지 민수가 묻고, 재현은 그러면 좋겠다고 답했다. 재현은 그 앞뒤를 두 번 읽었다. 회사 컴퓨터에 남아 있기는 했다. 그렇다고 누가 이걸 가져갔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운영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팀장이 참고한 것은 면담 메모만이 아니라 인계 검토자료에 포함된 요약이었다고 했다.
“어떤 내용을 요약한 건가요?”
“연결된 업무 문서와 관련 대화를 묶은 자료입니다. 정확한 수집 구간은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재현은 문서 링크가 붙은 대화창을 봤다. 조금 전까지 읽던 연차 이야기가 화면에 남아 있었다.
“제가 직접 쓴 의견은 아니고요?”
“직접 제출한 의견인지, 자료에서 뽑은 내용인지 구분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날 늦게 받은 답에는 두 문장이 붙어 있었다. 요약은 ‘최근 업무 부담이 크며 휴식을 희망함’이었다. 회사 양식에는 그것이 담당자 의견을 참고하는 칸에 들어가 있었다.
재현은 요약을 원래 대화 옆에 놓았다. 연차라는 말이 빠져 있었다. 그러나 이 대화에서 나온 요약인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비슷한 말을 다른 데서 했을 수도 있었다. 알고 싶은 건 자신이 한 모든 말이 아니라, 이 문장을 만드는 데 실제로 사용한 말이었다.
그는 원본과 수집 경로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요약을 퇴사나 역할 축소에 동의한 뜻으로 사용하지 말아달라는 말도 남겼다.
민수는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재현이 이름을 부르자 가방을 멨던 손을 멈췄다.
“우리 연차 얘기했던 대화 있잖아. 행사 문의 끝나고.”
민수의 표정이 굳었다.
재현은 급히 말을 이었다. “네가 보냈다는 얘기 아니야. 내 의견이라고 적힌 게 있어서, 그때 내가 무슨 말 했는지 같이 보고 싶어.”
민수는 화면에 떠 있는 문장을 읽었다. 요약에서 자신의 답이 어떻게 보였는지 묻지는 않았다. 잠깐 뒤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내일, 그 얘기한 부분만 보자. 전부 말고.”
재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왜 전부는 안 되느냐고 묻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