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는 약속한 대화 부분을 미리 열어놓았다. 재현은 의자를 가져오면서 어디까지 보면 되는지 먼저 물었다.
“문서 링크 보낸 데부터 연차 얘기 끝난 데까지.”
두 사람은 같은 대화를 각자의 컴퓨터에서 열었다. 재현이 행사 문의 대응 기준을 정리해 보내고, 민수가 고생했다고 답한 뒤였다. ‘쉬고 싶다’는 말 아래에 다음 달 연차를 붙여 쓸 수 있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재현은 그 답을 읽으면서 그날 민수가 편의점에서 사온 아이스크림까지 떠올렸다.
“내가 정말 그만둘 생각이었으면 여기다 그렇게 말했겠지.”
민수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적어도 이때는 휴가 얘기였어.”
재현은 자기가 조금 전 한 말을 다시 생각했다. 그만둘 생각이 있었느냐와 여기 적힌 말이 무슨 뜻이냐는 같은 질문이 아니었다. 민수는 자신이 아는 것까지만 말하고 있었다.
“맞아. 이때 얘기만 확인하면 돼.”
재현은 운영 담당자에게 받은 요약을 열었다. 휴식을 희망한다는 문장 아래, 회사가 참고 의견으로 넣은 부분까지 보여주었다. 민수는 손가락으로 원래 대화의 연차 문장을 짚었다.
“이건 왜 없어?”
“아직 이 대화에서 만든 건지 확인 중이야. 그래서 이 앞뒤를 같이 보내려고.”
민수가 의자를 뒤로 밀었다.
“보낸다고?”
재현은 민수의 눈을 봤다. 어제는 같이 보자고만 했다. 지금 자기 머릿속에서는 이미 첨부할 자료가 되어 있었다.
“네가 보여줬으니까 괜찮은 줄—”
말을 멈췄다. 민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재현에게 화면을 보여준 것과 회사에 제출해도 된다는 말 사이를 자신이 건너뛴 것이었다.
“미안. 먼저 물었어야 했어.”
재현은 작성 중인 메일에서 첨부 창을 닫았다. 원래 대화는 자기 화면에도 있었지만 둘이 한 말이었다. 지금 필요한 범위를 민수에게 설명할 수 있었다.
“내가 휴가 얘기한 걸 역할 줄이고 싶다는 뜻으로 쓰지 말아달라고 할 거야. 받는 사람은 운영 담당자하고 팀장. 링크를 보낸 부분하고 연차 답변까지만.”
민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자기 화면을 위로 올렸다가 다시 내려왔다. 앞에는 다른 직원의 일정 이야기도 있었다.
“다른 사람 얘기는 빼. 내 답만 네가 필요한 데 잘라 붙이지 말고, 우리가 확인한 구간 그대로 보여줘.”
“보내기 전에 보여줄게.”
민수는 오전 상담을 먼저 처리하겠다고 했다. 재현은 기다렸다. 민수가 왜 즉시 허락하지 않는지 묻는 대신 자기 고객에게 답했다. 점심이 가까워져서야 민수가 재현을 불렀다.
재현은 보낼 구간과 메일의 목적을 한 화면에 열었다. 민수가 읽는 동안 말을 보태지 않았다. 민수는 받는 사람을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이 범위로, 그 두 사람한테 보내는 건 괜찮아.”
재현은 범위와 목적을 메일에 적었다. 민수와 확인한 대화라는 설명은 붙였지만, 민수가 회사 조치 전체에 반대한다거나 자신의 주장 전부에 동의한다는 말은 넣지 않았다.
보내고 나서 두 사람은 식당으로 내려갔다. 민수가 먼저 주문했고 재현이 같은 것을 골랐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둘 다 휴대전화를 만졌다.
“노트북 잡았던 거.” 재현이 말했다.
민수가 고개를 들었다.
“그때도 미안했어. 보여주기 싫다는 말을 듣고도 손이 먼저 갔어.”
“안 보여주면 뭔가 숨긴다고 생각하잖아.”
재현은 아니라고 하지 못했다. 민수는 물을 마신 뒤 수저를 들었다. 재현도 따라 들었다. 사과를 했다고 민수가 웃어줄 의무는 없었다.
오후에 운영 담당자가 자료를 받았다고 답했다. 실제로 어떤 구간이 수집됐고 요약에 쓰였는지 확인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재현은 팀장에게 따로 면담을 요청했다. 이 대화의 출처를 확인하는 동안에도 자신의 일이 더 넘어갈 수 있었다. 그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말을 한 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