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긴 주소

서경은 봉투 안으로 손가락을 넣어 열쇠 고리를 잡았다. 노란 천 아래에서 흰 표찰이 나왔다. 203. 조금 전 다온상가 이층까지 배달해 달라던 말이 떠올랐다.

“열쇠부터 드릴게요.”

서경은 카운터 안쪽에 내려놓았던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표찰이 보이도록 사진을 찍고 열쇠를 카운터에 놓았다. 지선은 그것을 바로 집어 들었다.

“이게 없으면 못 들어가서요. 문 앞까지 갔다 왔어요.”

두 열쇠를 번갈아 확인한 지선이 고리를 니트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봉투를 봤다.

“열쇠는 왜 찍어요?” 지선이 물었다.

“주머니에서 나온 걸 남겨 두려고요.” 서경은 빈손을 보였다. 열쇠는 이미 지선의 주머니에 있었다. 다시 달라고 하면 손님을 붙잡기 위해 그랬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주소까지 같이 찍혔잖아요.”

서경은 접수장 쪽으로 전화기를 돌렸다. 화면을 가리려는 동작이 된 것을 알고 멈췄다. “다른 데 올리려고 찍은 건 아니에요.”

지선은 자기 주머니 안에서 고리를 한 번 쥐었다 놓았다. “그럼 그 사진으로 뭘 하려고요?” 서경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 조금 전 누른 문자 전송이 끝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알 것 같았다. 사진을 남긴 다음에도 누구에게 왜 보여 줄지 말해야 했다.

“노란 거요. 그것도 주세요.”

서경은 이름표를 꺼냈다. 지선은 펼치지도 않은 천을 받으려 했다. 서경은 유리문의 전단을 가리켰다.

“저 사진하고 같은 물건 같아서요. 확인할 수 있게 한 장만 찍을게요.”

지선이 전화기 앞을 손으로 가렸다. “어디 올리려고요?”

“올리지 않을 거예요.” 서경은 촬영 버튼에서 손가락을 뗐다. “아이를 찾는 데 필요한 건지 확인하려고요.”

“여기 단체방 같은 데 올리지는 마세요.” 지선이 말했다. “애 이름이 여기저기 돌아다니잖아요.”

“그렇게는 안 할게요.”

서경은 화면에서 이름표가 빠지도록 전화기를 낮췄다. 카메라가 켜져 있는 한 계속 찍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손가락을 화면에서 떼고, 이름표를 카운터 위에 내려놓았다.

“뒷면도 볼게요. 번호가 있어서요. 이 물건이 맞는지 확인할 때만 보여 주려고요.”

전화기 앞을 가린 손은 그대로인 채,지선이 다른 손으로 천 끝을 눌렀다. 서경은 잡아당기지 않았다. 서로 다른 끝을 쥔 채 기다리는 대신 자기 손을 먼저 놓았다. 이름표가 지선 쪽으로 조금 밀려갔다.

“사진을 못 남기면, 어떻게 생긴 걸 봤는지라도 말씀드릴 거예요.” 서경은 유리문을 봤다. “저기 있는 아이 물건 같으니까요.”

“찍은 다음엔 바로 주실 거죠?” 지선이 물었다.

“네. 이 물건은 돌려드릴게요.” 서경은 천에서 손을 뗀 채 대답했다.

지선은 잠깐 전단을 봤다. 서경이 전화기를 내린 채 기다리자, 가리고 있던 손을 거뒀다.

“찍고 주세요. 젖으면 그림 번져요.”

서경은 손을 앞치마에 닦고 천을 폈다. 이름표만 화면에 담아 앞뒤로 찍었다. 뒤에 적힌 번호의 마지막 두 자리가 군데군데 끊겨 있었다.

“이 번호도 전단하고 같아요.”

지선이 손을 내밀었다. “알아요. 제가 썼어요.”

서경은 천을 돌려줬다. 지선은 접힌 모서리의 빨간 실이 손톱에 걸리자 당기지 않고 손가락을 빼냈다. 풀린 실을 손끝으로 눕힌 뒤 이름표를 접었다.

서경은 모서리에서 작은 실오라기가 튀어나온 것을 보고 가위가 있는 쪽을 향했다. “길게 나온 것만 잘라 드릴까요?”

“아니요.” 지선의 대답이 빨랐다.

서경은 가위를 꺼내지 않았다. 지선은 빨간 실을 안으로 눕혔다가 다시 폈다. 끝을 잘못 접으면 천 한쪽이 울었다. 젖은 손바닥에 대지 않으려고 손등 위에 올리고 모서리를 맞췄다.

“이대로 두면 또 걸릴 것 같아서요.”

“알아요. 나중에 같이 볼 거예요.”

서경은 그 말에 더 권하지 않았다. 자기에게는 정리할 실 한 가닥이었지만 손님에게는 잘라 버리면 안 되는 부분이었다. 앞뒤 사진에 잡힌 빨간 실도 그대로였다. 서경은 전화기에 남은 그림과 손님의 손등 위 그림을 번갈아 봤다. 어느 쪽도 아직 아이가 돌아왔다는 대답은 아니었다.

“어제 아이 아버님이 오셨어요. 찾으면 전단을 떼러 오신다고요.”

실을 누르던 손이 멎었다. “직접 왔어요?”

서경이 고개를 끄덕이자 지선은 전단에서 눈을 떼고 물었다. “그 집 사람이세요?”

“아니요. 이 가게에 전단을 부탁하셨어요.”

“그러면 모르는 얘기도 있겠네요.”

“그분이 뭐라고 했어요? 누구랑 있었다고는 안 해요?”

서경은 접수장을 덮으려다 그대로 뒀다. “전단 붙여 달라고 하셨어요. 저는 아이가 어디 있었는지 몰라요.”

“전단만 보고 다 아는 것처럼 물으시니까요.”

그 말은 맞는 것 같았다. 서경이 아는 사람은 손님과 전단을 맡긴 남자뿐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이가 마지막으로 어디에서 웃었는지는 몰랐다. 그런데 지금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면 조금 전 찍은 사진까지 지워야 할 것 같았다.

“다 안다고 생각한 건 아니에요. 그래서 확인해 달라고 하려는 거예요.”

지선은 손톱으로 전화기 케이스 모서리를 눌렀다. 접수 보관표가 그 틈에서 조금 나왔다. 서경은 남에게 맡긴 옷을 돌려받으려는 손님 앞에 서 있었다. 그 사실과 실종 물건을 본 사실을 둘 다 말할 수밖에 없었다.

지선은 이름표를 열쇠와 같은 니트 주머니에 넣었다. 서경의 전화기에 신고를 확인 중이라는 답이 왔다. 현재 상황을 묻는 문장 아래에 손님 이름을 적었다.

임지선. 남색 니트. 접수할 때 다온상가 2층 배달을 물었습니다. 열쇠 표찰은 203입니다. 아이가 거기 있는지는 못 봤어요.

서경은 방금 찍은 이름표 앞뒤 사진과 열쇠 사진을 보냈다. 고개를 들자 지선이 자기 전화기 케이스를 닫고 있었다.

“아빠한테 보내셨어요?”

“경찰에 보냈어요.” 서경은 지선을 보고 말했다. “이름표가 나왔다고 신고했어요.”

지선의 시선이 서경의 전화기에 머물렀다. 서경은 화면을 끄고 카운터 안쪽에 놓았다. 봉투가 비어 있었다. 지선에게 돌려주지 않은 것은 이제 코트뿐이었다.

“얼룩 덜 빠져도 돼요. 가져갈게요.” 지선은 문이 아니라 작업실 쪽을 봤다.

“아까는 나중에 찾으신다고…….” 서경은 말을 끝내지 못했다.

“지금 가져갈래요.” 지선이 답했다. “얼룩 안 지우셔도 된다고요.”

서경은 작업대 쪽을 봤다. 옷을 돌려달라는 말에 대답하려면 뒤에 걸린 코트를 꺼내 와야 했다. 조금 전에는 세탁 중이라는 말로 미뤘지만, 손님은 이제 작업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사람도 아니었다. 지선은 서경이 보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이도 돌아왔어요?”

지선이 서경을 봤다. 한동안 답이 없었다.

“찾았으면 전단을 내려도 되잖아요.” 서경이 말했다. “지금 누구하고 있어요?”

지선은 전화기를 다시 열었다. 사진첩을 몇 번 밀더니 한 장을 눌러 카운터에 놓았다.

아이와 여자가 함께 웃고 있었다. 여자는 아이의 허리를 팔로 감싸고 있었고, 아이는 종이를 접어 만든 고래를 들고 있었다. 전단보다 앞니가 덜 빠져 있었다. 사진 속 여자의 머리는 지금보다 짧았다.

“도하예요.” 지선은 화면 속 아이의 배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서경은 사진에서 손님의 얼굴로 눈을 옮겼다.

“제가 엄마예요.”

서경은 사진 옆의 얼굴을 다시 봤다. 손님의 말보다 얼굴이 먼저 맞아 들어왔다. 아이가 팔에 기대어 있었고, 그 팔의 주인은 지금 카운터 앞에 서 있었다.

“제가 잘 몰라서요.” 서경이 말했다.

지선은 전화기를 가져갔다. 사진은 닫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제 됐죠.”

사과 뒤에 코트를 내주면 끝나는 일처럼 들렸다. 서경은 빈 봉투를 접으려다 손을 멈췄다. 아이를 어디에 두고 왔는지는 아직 듣지 못했다.

지선이 유리문으로 갔다. 서경은 코트를 두고 그냥 나가려는 줄 알았다. 그러나 손님은 문을 열지 않고 실종 전단 앞에 섰다.

“이런 건 내려 주세요.”

바깥에서 보면 사진 옆으로 지선의 얼굴도 보일 것이었다. 지선은 안쪽 유리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조금 비켜섰다. “애가 나중에 보면 어떻겠어요. 친구들도 여기 다니고.”

서경은 문 쪽으로 한 걸음 갔다. 아이 아버지가 돌아오면 떼러 오겠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고 그 약속을 아이 엄마에게 그대로 들이밀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가 돌아온 건 확인해야 해서요.”

“엄마가 왔다잖아요.” 지선이 사진을 켜 둔 전화기를 들어 보였다. 서경의 얼굴이 작은 유리에 함께 비쳤다.

사진 속 아이는 작년인지 올해인지도 모를 햇빛 아래 있었다. 서경은 그 아이에게 어디 있느냐고 물을 수 없었다. 지선의 손이 전단 모서리의 테이프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