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뒤, 서경은 경찰의 확인 전화를 받고 그날 직접 들은 말들을 다시 전했다. 통화를 마친 뒤 유리문의 실종 전단을 떼었다. 아이 사진이 찢어지지 않게 테이프부터 천천히 걷어 냈다.
전단은 큰 봉투에 넣었다. 물건을 돌려줄 때 쓰는 종이봉투 묶음은 카운터 옆에 그대로 뒀다. 손님이 아이를 데려간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서경은 아이를 찾았다는 말만 했다.
다음 주 화요일에는 엄마가 회색 슬리퍼를 신고 가게에 왔다. 서경이 의자에 쿠션을 받쳐 주자 엄마는 그것을 조금 돌려 앉았다. 더 높여 줄까 묻자 엄마가 손을 저었다. 서경은 쿠션에서 손을 뗐다.
엄마가 돌아간 뒤, 준석과 도하가 들어왔다. 준석이 문을 잡고 있는 동안 도하는 천장에 달린 종을 올려다봤다. 그러고는 서경에게 작게 인사했다.
“고래 가지고 왔어요.”
도하는 회색 가방을 카운터에 올리고 앞주머니에서 비닐봉투를 꺼냈다. 노란 이름표가 들어 있었다. 서경이 살펴봐도 되는지 묻자 봉투를 열어 카운터에 올렸다.
“다시 달아 주세요.”
서경은 옷핀을 확인했다. 끝이 휘어 잘 닫히지 않았다. 새 핀을 꺼내러 돌아서는데 준석이 아이에게 말했다.
“새 이름표로 해도 돼. 아빠가 사 줄게.”
도하는 천을 자기 쪽으로 당겼다. “이거 엄마가 만든 거야.”
준석은 입을 다물었다. 서경이 크기가 다른 핀 두 개를 가져오자 도하는 큰 것을 골랐다.
“잘 안 떨어지게요. 빨간 건 놔두고.”
서경은 작은 받침 천을 꺼내 이름표 뒤에 대 봤다. 앞의 그림을 가리지 않게 모서리를 접자 도하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이것도 노란 거예요?”
“뒤에만 붙일 거야. 핀이 천을 또 잡아당기지 않게.”
도하는 서경이 들어 보인 뒷면과 앞면을 번갈아 봤다. 준석이 가방을 카운터에서 내려 주려 하자 아이는 아직 여기 두라고 했다. 어디에 달지 보아야 한다고 했다.
서경은 이름표를 뒤집기 전에 한 번 더 보여 줬다. 고래의 빨간 자리는 그대로였다. 도하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바늘에 실을 꿰었다. 옆에서 준석이 아이 가방의 무게를 받쳤다. 천을 바꾸는 대신 뒤를 받치는 작은 작업이어서,서경은 도하가 보는 앞에서 끝낼 수 있었다.
서경은 핀이 들어갈 자리 뒤에 천을 덧대고 바늘을 상자에 넣었다. 새 핀이 잠기는 것을 보여 주자 도하는 손톱으로 끝을 건드려 봤다. 그러고는 이름표를 뒤집어 아버지에게 내밀었다.
“번호도 다시 써 줘.”
“이제 외우면 되지.”
“까먹을 수도 있잖아.”
서경은 천 밑에 종이를 받치고 펜을 내밀었다. 준석이 받아 닳은 숫자를 덧썼다. 도하는 아버지의 손을 보다가 말했다.
“그날도 여기 보여 줬어.”
준석이 펜을 멈췄다. 도하는 번호 끝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엄마가 일요일에는 집에 간댔어. 근데 월요일에도 학교 안 가도 된대. 아빠한테 물어보려고 했어. 진짜 안 가도 되는지.”
“학교에는 아빠가 말해 뒀어. 도하 혼나는 일 없어.”
도하는 조금 고개를 끄덕였다. 준석이 펜을 놓으려 하자 아이가 닳은 곳을 한 번 더 가리켰다. 아버지는 마지막 숫자의 끊긴 선을 이었다.
도하는 천을 들어 불빛 쪽으로 돌려 봤다. 손톱으로 문지르려 하자 준석이 아직 마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이는 손을 멈추고 천이 닿지 않게 손바닥을 오므렸다.
“아빠 전화기랑 맞아?”
준석이 자기 전화기를 꺼냈다. 번호를 보여 주자 도하는 이름표를 나란히 놓았다. 앞에서는 차례로 보다가 마지막 두 자리에서 멈췄다.
“이제 이거 봐도 돼.” 준석이 말했다.
도하는 외워 보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천을 손에 쥐고 숫자 끝을 한 번 더 봤다. 준석은 맞혀 보라고 묻지 않고 아이가 이름표를 뒤집을 때까지 자기 화면을 켜 두었다. 서경은 펜 뚜껑을 닫고 옆에 뒀다. 준석은 번호 비교를 마친 뒤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었다.
“엄마가 떼고 이따가 달아 준댔어.” 도하가 천을 자기 쪽으로 가져왔다. “그래서 잡으려고 했어.”
한 손을 앞으로 뻗었다. 다른 손은 컵을 쥔 것처럼 둥글게 말려 있었다.
“이 손에 우유 있었는데 같이 뻗어서 쏟았어. 엄마 팔에.”
서경은 아이의 손을 봤다. 소매를 처음 받쳤을 때 맡았던 단내가 떠올랐다. 도하는 두 손을 내려 이름표를 폈다.
“내 가방에 달아 달라고 했는데.”
도하가 가방의 어깨끈 옆을 짚었다. “여기에 달면 안 떨어져요?”
서경은 천을 덧댄 자리를 끈 옆에 맞췄다. “덧댄 데에 꽂을게. 잠그고 당겨 보자.” 도하가 고개를 끄덕이자 새 핀을 꽂아 잠갔다. 이름표를 조금 당겨 보여 주자 아이도 같은 곳을 잡고 당겨 봤다.
준석은 도하가 자기와 지내고 있으며 목요일부터 학교에 간다고 했다. 교실 앞까지 같이 가기로 했다는 말에 도하가 가방을 들어 멨다.
“엄마한테 전화해도 돼?”
준석이 아이를 봤다. 도하는 이름표를 들었다. “이거 달았다고.”
준석은 잠깐 입술을 다물었다가 집에 가서 통화할 수 있는지 같이 알아보자고 했다.
도하가 아버지 얼굴을 살폈다. “오늘 엄마 방에서 자는 건 싫어.”
준석이 한쪽 무릎을 굽혔다. “그래. 오늘 거기 안 가.”
준석은 전화기를 꺼내다 아이를 봤다. “오늘 거기 안 간다는 건 아빠가 말할까?”
도하는 이름표를 만졌다. “그거 달았다고는 내가 말할래.”
“그래. 네가 말해.”
준석은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었다. 도하가 아버지의 손을 한 번 봤다. 서경은 아이가 다시 물을 때까지 기다리며 수선한 자리를 정리했다. 좋은 소식을 전하고 싶은 것과 오늘 돌아갈 곳을 정하는 것이 서로 다른 말로 남아 있었다.
문 위의 종이 바람에 작게 흔들렸다. 도하는 소리 쪽을 올려다보다가 가방을 들어 보았다. 준석은 도하가 먼저 끈을 잡을 수 있게 가방 윗부분만 받쳐 줬다.
도하는 가방을 다시 고쳐 멨다. 어깨끈이 뒤집히자 준석이 손을 내밀었다. 아이가 먼저 끈을 잡는 것을 보고 손을 거뒀다.
준석이 수선 요금을 내고 문을 열었다. 도하는 이름표를 한 번 더 만진 뒤 나갔다.
반년쯤 뒤, 두 사람은 맡겨 둔 이불을 찾으러 왔다. 이번에는 도하가 먼저 문을 열고 아버지를 기다렸다. 이름표는 여전히 가방 왼쪽 어깨끈 옆에 달려 있었다.
서경이 이불을 꺼내는 동안 준석이 지선의 편지를 받았느냐고 물었다. 며칠 전에 온 편지였다. 서경은 읽은 뒤 실종 전단과 함께 큰 봉투에 넣어 뒀다.
번호를 알면서도 걸어 주지 않았습니다. 도하가 떠나겠다고 할까 봐 그랬습니다. 문을 잠근 것도 다칠까 봐서라고 했지만, 그 애가 나가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받았어요.”
준석이 이불 포장 손잡이를 잡았다. “재판도 끝났어요. 도하를 가둔 일로 징역형에 집행유예를 받았고, 교육도 다녀요.”
“내 얘기 해도 돼?” 도하가 아버지의 소매를 당겼다.
준석이 돌아보며 말을 멈췄다. 도하는 서경에게 이름표를 들어 보였다.
“엄마 봤어요. 고래 보여 줬어요.”
“너는 어땠어?”
도하는 이름표를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고래 보여 준 건 좋았어요. 그러고 나서는 내가 이제 가겠다고 했어요.”
“그랬구나.”
“엄마가 다음에 또 오랬는데, 다음에 정한다고 했어요.”
서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준석은 가정법원에서 정한 곳에서 직원과 함께 만난다고 설명했다. 엄마가 혼자 데리고 나갈 수는 없다고 했다. 도하는 들어 올렸던 이름표에서 손을 놓았다.
준석은 이불을 안으며 요즘은 학교 교문까지만 같이 간다고 했다.
“친구가 기다리니까.” 도하가 먼저 말했다. “내일 운동장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운동장에서 뭐 해?” 서경이 물었다.
“그네요. 먼저 가서 잡아 놓기로 했어요.”
“네가?”
“오늘은 친구가 먼저 기다렸어요. 내일은 내가 먼저 가고.”
도하는 가방끈을 고쳐 잡았다. “내일은 몇…….” 준석이 묻다 말고 이불을 고쳐 안았다. 도하는 집에서 나갈 때 말하겠다고 했다.
서경은 친구가 고래를 보았는지도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도하는 가방에 달린 이름표를 보여 주려 왔고,지금은 내일 누구를 기다릴지 얘기하고 있었다. 준석은 내일 나갈 때 불러 달라고 했다. 그때 같이 시간을 보자고 하자 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준석은 이불을 안고 문을 열었다. 도하는 따라가다가 카운터로 돌아왔다.
“아직 뭐 남았어?” 아버지가 물었다.
도하는 서경에게 가방을 조금 들어 보였다. “고래 발이 하나 가려졌어요.”
이름표 끝이 어깨끈 쪽으로 말려 있었다. 서경은 옷핀을 열어 천을 조금 옮겼다. 가려졌던 발이 나머지 두 개 옆으로 나왔다.
“이제 어때?”
도하는 고개를 숙여 그림을 봤다. 손가락으로 세 개를 차례대로 짚었다. 준석은 문을 잡고 있었고 서경은 옷핀에서 손을 뗀 채 기다렸다.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