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온상가 이층, 203호 안에서 도하는 문손잡이를 놓았다. 아래로 끝까지 눌러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손바닥에 손잡이 자국이 붉게 남아 있었다.
밖에 있는 남자는 경찰이라고 했다. 이름을 물어서 강도하라고 대답하자, 문에서 조금 떨어져 있으라고 했다. 도하는 회색 가방을 안고 뒤로 한 걸음 갔다.
가방에는 이름표가 없었다. 아까부터 엄마가 오면 다시 달아 달라고 하려 했다. 그러고 나서 아빠에게 전화해 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가방 앞주머니 지퍼가 반쯤 열려 있었다. 도하는 몸을 숙여 밖으로 나온 양말 끝을 밀어 넣었다. 엄마가 나갈 때는 펼쳐 놓고 있었지만,이제는 다 넣어 두고 싶었다.
지퍼에 천이 끼었다. 세게 당기려다 멈추고 양말을 안으로 더 밀었다. 조금 물렸다가 다시 당기자 닫혔다. 앞주머니 위에 옷핀이 붙어 있던 작은 자국이 보였다.
도하는 가방을 돌려 메 보았다. 꽉 채운 주머니가 허리에 닿았다. 무거워도 손을 놓고 문 옆에 둘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문이 열리면 다시 주우러 돌아오지 않아도 되게,가방을 다시 몸 앞으로 돌려 안고 두 끈을 손에 모아 쥐었다.
복도에서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낯선 소리 사이로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도하야. 엄마 왔어.”
도하는 문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가 멈췄다. 가방을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밖에서 어른들이 말을 주고받았지만 무슨 말인지 다 들리지는 않았다.
“문 앞에 있니?” 아까 말을 걸었던 남자가 물었다.
“아니요.”
“거기서 기다려. 문 열 거야.”
열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엄마가 나갈 때 들었던 소리였다.
“제가 먼저 들어갈게요.”
엄마의 말에 다른 어른이 잠깐만요, 하고 답했다. 도하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엄마가 들어오면 가방부터 내려놓으라고 할 것 같았다.
“아빠한테…….”
바깥의 말소리가 그쳤다. 도하는 문손잡이가 있는 곳을 보고 다시 말했다.
“아빠한테 전화할 수 있어요?”
“응. 나와서 같이 연락하자.”
남자가 대답했다. 뒤에서 엄마가 도하 이름을 불렀지만 도하는 가방을 내려놓지 않았다.
엄마가 이름을 다시 불렀다. 도하는 네,하려다가 입술만 움직였다. 방금 아빠한테 전화해도 된다는 대답을 들었다. 엄마한테 그 말을 다시 물어보면 안 된다고 할까 봐,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
대신 발밑을 봤다. 가방 끈이 신발 앞에 내려와 있었다. 도하는 한 손으로 끈을 짧게 쥐고,다른 손은 가방 밑에 받쳤다. 문을 열어 주는 사람이 가방을 내려놓으라고 하지 않아서 그대로 기다릴 수 있었다.
문 안쪽에서 딱, 소리가 났다. 손잡이가 내려가고 바닥에 가늘게 들어오던 복도 불빛이 넓어졌다.
검은 구두가 먼저 보였다. 제복을 입은 남자가 열린 문 옆에 몸을 낮췄다. 뒤쪽에는 엄마가 서 있었다. 회갈색 코트를 팔에 걸고 있었다.
“다친 데 있어?”
도하는 고개를 저었다. 남자는 문을 활짝 열어 둔 채 옆으로 비켰다. 엄마가 앞으로 한 발 왔다.
“가방 줘. 엄마가 들어 줄게.”
엄마가 코트를 팔 안쪽으로 밀어 올리고 손을 내밀었다. 도하는 가방을 조금 앞으로 내밀었다가 끌어당겼다. 엄마 손을 보고 나니, 들고 있는 것이 무거운 것 같았다.
“아빠한테 갈 거야.”
“알았어. 가방부터 줘.”
제복을 입은 남자는 문 옆에서 몸을 낮춘 채 기다렸다. 도하가 가방을 안고 움직이자 남자는 복도 쪽으로 비켜 길을 넓혀 줬다.
가방 옆이 문틀에 걸려 몸이 뒤로 당겨졌다. 도하는 끈을 놓으려다 두 손으로 가방을 앞으로 돌렸다. 문은 열린 채였다.
“내가 들고 갈래.”
엄마의 손이 가방을 따라 움직였다. 옆에 있던 다른 경찰관이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서 저하고 이야기하시죠.” 엄마가 그쪽을 보는 동안 도하는 문턱을 넘었다.
복도에 서서 방 안을 돌아봤다. 접힌 이불과 우유를 마셨던 자리가 보였다. 엄마는 문 옆에 있었고, 도하와 나란히 선 남자가 복도 끝을 가리켰다.
“저쪽에서 아빠한테 전화하자.”
도하는 남자를 따라 몇 걸음 더 갔다. 뒤에서는 엄마가 대답하는 소리가 났다. 이제 어떤 말인지는 잘 들리지 않았다.
남자가 전화기를 꺼냈다. 도하는 가방 끈을 손가락에 감았다 풀었다. 남자는 조금 떨어져 전화를 걸었다.
“도하 아버님 맞으십니까. 아이 찾았습니다.”
남자는 통화를 끊지 않고 돌아와 전화기를 내밀었다. 도하는 가방을 발 앞에 내려놓고 두 손으로 받아 들었다.
“도하야?”
아빠 목소리였다. 도하는 전화기를 귀에 더 가까이 댔다.
“나 나왔어.”
“거기 경찰 아저씨랑 있어. 아빠 갈게.”
“나 여기 어딘지 몰라.” 도하가 말했다.
“괜찮아. 아저씨한테 물어볼게. 너 있는 데로 갈 거야.”
도하는 옆에 선 남자를 올려다봤다. 남자는 전화를 가져가려고 손을 내밀지 않고 기다렸다. 도하는 아빠 목소리를 더 들을 수 있었다.
“계단으로 내려가?”
“지금은 아저씨랑 같이 있어. 아빠가 어떻게 만날지 물어볼게.”
도하는 복도 바닥을 봤다. 혼자 계단을 찾으러 가지 않아도 됐다. 신발 앞에 내려놓은 가방이 있어서,자기가 어디까지 나왔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도하는 발 앞의 가방을 내려다봤다. 끈 끝이 자기 신발에 닿아 있었다.
“가방도 가지고 있어.”
아빠가 알았다고 했다. 도하는 전화기를 돌려주고 가방 끈을 다시 잡았다. 방 안으로 들어가 가져와야 할 것은 없었다.
그 무렵 새봄세탁에서, 서경은 가게에 남은 경찰관에게 코트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 돌려준 순서를 말하고 있었다.
미란이 옆에 의자를 펴 줬다. 서경은 앉아서 건네받은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쌌다. 물이 컵 안에서 가늘게 흔들렸다.
경찰관의 전화기가 울렸다. 그는 통화를 마치고 도하가 방에서 나왔으며 아버지와도 통화했다고 전했다. 잠긴 문은 가져간 열쇠로 열었다고 했다.
서경은 컵을 카운터에 내려놓았다. 밑바닥이 닿은 뒤에도 손을 떼지 못했다. 미란이 어깨를 짚어 주자 등을 의자에 기댔다.
미란이 빈 물건 봉투를 접으려 하자 서경이 손을 뻗었다. “그건 제가 할게요.”
“지금 안 해도 돼.”
서경은 봉투에서 손을 뗐다. 미란은 대신 다 접어 치우지 않고 카운터 빈자리에 놓았다. 경찰관이 다시 묻는 말에 서경이 대답하는 동안,미란은 젖은 문 앞만 닦았다.
가게 안에 사람 둘이 더 있다고 서경의 일이 전부 없어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막힐 때마다 혼자 말을 만들어 이어 갈 필요는 없었다. 경찰관이 자기가 적은 부분을 짚어 물으면 서경은 그때 한 일부터 답했다.
진술을 마친 경찰관이 나갔다. 미란도 분식집 창문에서 손을 드는 손님을 보고 일어났다. 서경이 고맙다고 하자 문 앞에서 돌아봤다.
“문 닫을 때 불러. 불 켜져 있으면 와도 되고.”
벽시계는 일곱 시에 가까웠다. 서경은 언제 오느냐는 엄마의 문자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 아이 이름표가 나와 경찰이 왔고, 이제 아이를 찾았다고 말했다.
“다친 건 아니야. 그런데 오늘 좀 늦을 것 같아.”
“오늘 못 와도 돼.” 엄마가 말했다. “슬리퍼는 됐으니까, 문 닫을 때 미란 씨 불러.”
“슬리퍼 챙겨 놨는데.” 서경이 말했다.
“그거 내일 신어도 돼. 지금 너는 뭐 하고 있어?”
서경은 앞치마와 카운터의 빈 봉투를 봤다. “앉아 있어. 물도 마셨고.”
엄마는 그제야 응,하고 답했다. 병원 이야기를 더 묻지 않아도 되는 침묵이 잠깐 이어졌다. 서경은 전화기를 귀에서 떼지 않고 의자에 앉은 채로 엄마가 침상 옆 물건을 옮기는 소리를 들었다. 오늘 못 간다는 말을 다시 취소하지 않아도 됐다.
서경은 알았다고 했다. 건조기에서 수건을 꺼내다가 맨 위의 한 장만 접었다. 모서리가 맞지 않았다. 다시 펼치려던 손을 멈추고 바구니에 내려놓았다. 나머지는 내일 해도 됐다.
카운터 구석의 가게 전화가 울렸다. 전단을 맡겼던 강준석이었다. 도하를 만났고, 경찰에게 세탁소 이야기를 듣고 연락했다고 했다.
“아이는 괜찮아요?”
“밥은 먹었대요. 그런데 자꾸 문 쪽을 봐요.” 준석이 잠깐 말을 멈췄다가 물었다. “이름표가 코트에 있었던 거죠?”
“네. 그 번호로 전화해 달라고 해서 뗐다고, 어머님이 말씀하셨어요.”
수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해졌다. 준석은 일 년째 따로 살고 있다고 했다. 토요일 여섯 시에 데려오기로 했는데 오지 않았고, 새로 빌렸다는 재봉 교실의 주소는 몰랐다고 했다.
“이사하면 아이를 못 볼까 봐 그러시는 것 같았어요.”
“다음 학기예요. 만날 날은 같이 정하고 있었어요.” 준석은 말을 멈췄다. 가까이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내 고래는?”
준석이 전화기를 귀에서 조금 내린 것 같았다. 아이에게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경찰관이 가지고 계셔. 잃어버린 거 아니야.”
“엄마 주머니에 있었어?”
서경은 수화기를 고쳐 들었다. 준석도 바로 답하지 않았다.
“아빠. 그거 버리지 마.”
준석이 알았다고 했다. 도하가 말을 더 이었지만 이번에는 멀어서 들리지 않았다. 준석이 서경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죄송합니다. 지금 애가.”
“아이 얘기 들으세요. 저는 괜찮아요.”
통화가 끝났다. 서경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비어 있는 물건 봉투를 접었다. 이름표가 있던 자리에 손을 넣어 보지 않아도 이제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