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에 남은 것

한서경은 유리문에 붙은 실종 전단의 모서리를 눌렀다. 밤새 비를 맞은 문틈으로 바람이 들어올 때마다 종이가 조금씩 들떴다. 사진 속 아이는 빠진 앞니를 드러내고 웃고 있었다. 강도하, 여덟 살.

어제 전단을 맡긴 아버지는 아이가 돌아오면 자기가 떼러 오겠다고 했다. 서경은 테이프를 한 조각 더 붙이고 문밖을 봤다. 회갈색 코트를 입은 여자가 우산을 접고 있었다.

여자는 들어오자마자 왼쪽 소매를 내밀었다. 손목 안쪽이 젖어 짙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초코우유인데, 지워질까요? 조카가 쏟아서요.”

서경은 소매 밑에 손을 받쳤다. 젖은 천에서 단내가 났다. 여자는 수건으로 눌러 봤는데도 남았다고 했다.

카운터 안쪽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무릎 수술을 받고 입원한 엄마의 문자였다. 올 때 회색 슬리퍼 좀 가져와. 서경은 엄마 대신 혼자 세탁소를 지키고 있었다. 일곱 시에 문을 닫고 병원에 갈 참이었다.

“내일 오후에 찾으실 수 있어요.” 서경은 답장을 미루고 옷걸이를 꺼냈다. 여자가 코트를 벗자 남색 니트 소매 끝도 조금 젖어 있었다.

여자는 접수장에 임지선이라고 적었다. “다온상가 이층인데, 배달도 되나요?” 걸어서 몇 분이면 되는 곳이었다. 그래도 배달을 나가려면 가게를 비워야 했다. 서경이 혼자라 어렵다고 하자 지선은 찾으러 오겠다며 번호를 남겼다.

지선은 벗은 코트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오늘은 안 될까요? 다 말리지는 않아도 돼요.”

서경은 엄마가 적어 둔 작업 순서표를 봤다. 소매만 손보면 금방 끝날 것 같아도, 무슨 얼룩인지 보고 천에 약품을 대 보는 일부터 해야 했다. 엄마라면 어디부터 만져 봤을지 알 것 같다가도, 손님의 옷 앞에서는 자신이 없었다.

“지금 해 드린다고 했다가 옷 상하면 안 되니까요. 먼저 확인하고 연락드릴게요. 오늘 찾으셔야 하면 안 맡기셔도 되고요.”

지선은 젖은 소매를 안으로 접었다. “입고 다니기는 좀 그래서요.” 코트 밑단에 맺힌 물방울이 카운터에 떨어졌다. 서경이 수건을 가져오자 그제야 옷을 놓았다.

“그럼 내일 찾을게요. 소매는 너무 세게 하지 마세요.”

서경은 접수장에 소매 안쪽 확인이라고 적었다. 해 주겠다고 먼저 말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손님은 곧 끝나기를 바라는 얼굴이었고, 서경에게는 아직 확인할 일도 남아 있었다.

“주머니에 물건은 없으세요?”

“없을 거예요.” 지선은 보관표를 전화기 케이스에 끼웠다. 서경이 코트를 들자 젖은 소매가 안으로 접혔다. 지선은 잠깐 손을 뻗었다가, 서경이 소매를 펴 옷걸이에 걸어 주는 것을 보고 거뒀다.

문 위의 종이 울렸다. 맞은편 분식집의 미란 아주머니가 밀대로 천막의 빗물을 밀어내고 있었다. 지선은 쏟아지는 물을 피해 골목으로 들어갔다.

미란이 천막 밑에서 서경을 보고 손을 들었다. 서경이 문을 조금 열자 빗소리 사이로 목소리가 건너왔다.

“오늘도 혼자 닫아?”

“네. 다 할 수 있어요.”

미란은 들어와 먹으라는 듯 자기 가게를 가리켰다. 서경은 병원에 간다는 뜻으로 입 모양을 만들고 손을 저었다. 분식집 안에서 누가 부르자 미란이 먼저 돌아섰다. 서경도 문을 닫았다. 수건을 카운터에 놓고 엄마 자리에 서 있으니, 저녁 한 번쯤은 혼자 마칠 수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서경은 엄마에게 슬리퍼를 챙겨 일곱 시에 출발하겠다고 답했다. 접수장 주소 옆에는 배달 불가라고 적었다. 코트를 들고 카운터 옆 통로를 지나 작업대로 갔다.

흰 천을 깔고 코트를 폈다. 안쪽 건조기에서는 다른 손님의 수건이 돌고 있었다. 서경은 접수번호를 적은 종이봉투를 옆에 놓고 주머니를 확인했다.

오른쪽 주머니에서 작은 열쇠 두 개가 나왔다. 둥근 고리에 흰 표찰이 달려 있었다. 203. 서경은 열쇠를 봉투에 넣었다.

왼쪽에는 접힌 천이 있었다. 손바닥 반만 한 노란 이름표였다. 가방에 달 때 쓰는 은색 옷핀이 꽂혀 있었고, 파란 고래 밑에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강도하.

서경은 문 쪽을 봤다. 방금 손으로 눌러 붙인 종이가 유리 너머로 환하게 비쳤다.

코트를 작업대 옆에 걸고 이름표를 들고 갔다. 전단 위에는 아이 얼굴이, 아래에는 회색 가방에 달린 이름표 사진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본 날은 그제였다.

서경은 노란 천을 사진 옆에 댔다. 고래 배 밑의 선 세 개, 오른쪽 모서리에 남은 빨간 바늘땀, 그 끝에서 튀어나온 실까지 같았다. 이름표를 뒤집자 전화번호가 나왔다. 마지막 두 자리는 닳았지만 나머지는 전단의 번호와 맞았다.

서경은 이름표를 조금 떼었다가 다시 사진 옆에 댔다. 닳은 숫자를 억지로 읽어서 맞춘 것은 아닌지 한 자리씩 봤다. 전단의 선명한 번호와 천에 끊겨 남은 번호가 같은 순서로 이어졌다.

어제 아이 아버지는 전단을 붙일 자리를 자꾸 문 가장자리로 골랐다. 손님들 들어오는 데 방해되지 않게요, 하며 테이프 끝을 접어 주었다. 서경이 가운데도 괜찮다고 하자 고맙다는 말 대신 아이 얼굴이 잘 보이는지 밖에 나가 확인했다. 돌아올 때 문 위의 종이 한 번 더 울렸다.

그 남자가 지금 이 이름표를 보면 무슨 말을 할지 떠올랐다. 서경은 천을 꼭 잡았다가, 빨간 실이 손가락에 걸리자 힘을 풀었다. 우선 어디서 나왔는지부터 말하면 됐다. 손님이 왜 가지고 있었는지는 자신도 몰랐다.

아이 가족이 맡긴 옷일 수도 있었다. 서경은 접수장에 적힌 손님 번호를 보다가 전단 아래의 신고 안내로 눈을 옮겼다. 가족인지 아닌지를 자신이 알아낸 뒤에 연락할 필요는 없었다.

작업대로 돌아가 열쇠 봉투를 가져왔다. 카운터에 봉투를 놓고 이름표를 얹은 뒤 휴대전화에 112를 눌렀다.

접수장의 이름과 주소를 가까이 당겼다. 물건이 나왔다는 말 다음에는 무엇을 설명해야 할지 입 안으로 짧게 해 봤다. 아이를 봤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코트 주인은 조금 전 나간 손님이었고, 그 손님도 주머니를 비웠다고 생각했을 수 있었다.

엄마에게 보낸 답장이 떠올랐다. 누가 다시 옷을 찾으러 오면 확인하고 전화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지금 이 번호를 누를 이유도 없어질 것 같았다. 서경은 접수장 대신 전단의 아이 얼굴을 보고, 전화기를 귀에 가져갈 수 있게 방향을 바꿨다.

통화 버튼에 손가락을 가져가는 순간, 문 위의 종이 울렸다.

임지선이 문을 잡고 서 있었다. 코트를 벗고 나갔던 어깨가 비에 젖어 있었다. 그녀는 우산을 접을 때처럼 문간에 머물지 않고 곧장 카운터로 왔다.

“주머니에 물건을 두고 갔어요.”

서경은 전화기를 카운터 안쪽에 내려놓았다. 화면에 숫자 세 개가 켜져 있었다. 이름표를 봉투 안으로 밀어 넣고 입구를 눌렀다.

“열쇠요?”

“네. 코트도 같이 주세요.” 지선이 손을 내밀었다.

봉투를 밀어 주려던 서경의 손이 멈췄다. 코트와 물건을 받으면 손님은 나갈 것이었다. 전화기까지는 손 하나만 뻗으면 닿았다. 지선의 시선이 그 손을 따라오고 있었다.

“이미 세탁 시작했어요.”

서경은 말을 하고 나서 작업실 쪽을 봤다. 가운데 레일에 걸린 바지들 뒤로 작업대 끝이 보였다. 코트는 그 옆에 걸려 있었다. 얼룩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았다.

수건을 적시거나 얼룩을 문지르면 시작했다는 말은 맞출 수 있었다. 서경의 눈이 작업대 위 솔로 갔다. 지금 코트를 가지러 등을 돌리면 전화기는 카운터에 남고, 이름표는 손님 바로 앞에 놓이게 될 것이었다.

차라리 아직 못 했다고 말할까. 그러면 왜 그랬는지 물을 것이었다. 서경은 봉투 입구에 붙은 손을 떼지 못했다. 미루었던 몇 초가 작업 하나를 늦춘 것보다 훨씬 큰 잘못처럼 느껴졌다. 지선이 기다리는 것은 코트인데, 서경은 코트 이야기로 시간을 얻고 있었다.

“소매부터 손보고 있어서요.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지선은 레일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서경은 코트가 보일까 봐 움직이지 못했다. 건조기 안의 수건이 유리에 부딪히며 둔한 소리를 냈다.

“얼마나 걸려요?”

“확인하고 드릴게요.”

“그럼 열쇠부터요.”

“주머니에 있는 것만 주시면 돼요.” 지선이 말했다. “옷은 나중에 찾을게요.”

서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열쇠를 돌려주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고 방금 본 이름표까지 아무 말 없이 건네고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전화기를 보려는 눈길을 거두고 지선의 손을 봤다. 내민 손가락 끝에서 빗물이 떨어져 카운터에 작은 점이 생겼다. 서경은 그 손을 더 기다리게 하고 있었다.

지선이 전화기를 꺼내 화면을 보는 동안 서경은 자기 전화기를 카운터 아래로 가져왔다. 통화 화면을 닫고 문자를 열었다. 받는 사람에 112를 적었다.

은솔로 18 새봄세탁입니다. 실종 전단 강도하 아이 이름표가 손님 코트에서 나왔어요. 코트 주인이 지금 가게에 있습니다. 말로 통화하기 어려워요.

전송을 누르자 오후 6시 24분이 붙었다. 서경은 전화기를 내려놓고 봉투를 당겼다. 이제 열쇠를 꺼내 돌려줄 수 있었다.

봉투를 벌리는 순간 노란 천 끝이 따라 나왔다.

지선이 내밀고 있던 손을 멈췄다.

“다른 것도 나왔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