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밖의 사람

젖은 공기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서경은 발끝으로 문을 받치고 맞은편을 향해 손을 들었다.

“미란 아주머니, 잠깐 와 주세요.”

분식집 주방에서 미란이 고개를 내밀었다. 서경은 한 번 더 손을 들었다. “같이 있어 주세요.”

미란이 가게 안을 돌아보고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 곧 유리문을 열고 젖은 횡단보도를 건너왔다.

“나간다고 했잖아요.” 등 뒤에서 지선이 말했다.

서경은 옆으로 비켜 문을 더 넓게 열었다. “막지 않을게요.”

미란이 문 앞에 도착하자 서경은 전단을 가리켰다. “이 아이 물건이 나왔어요. 경찰에 연락했어요.”

“제 아이예요.” 지선이 말했다.

미란은 지선에게서 서경으로 눈을 옮겼다. “너는 괜찮아?”

“다친 데는 없어요.” 서경은 문손잡이를 놓지 못한 채 말했다. “그런데 혼자 있기는 싫어요.”

분식집 창문에서 손님이 손을 들었다. 미란은 그쪽으로 고개를 숙여 보이고 서경 옆에 섰다. “기다려 달라고 하고 왔어.”

미란은 서경의 손에서 문손잡이를 받아 잡았다. “안으로 들어갈까?”

서경은 지선 쪽을 봤다. 손님이 문과 카운터 사이에 서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으면 다시 같은 자리에 서게 될 것 같았다.

“여기 있어 주세요. 문은 열어 두고요.”

미란은 더 묻지 않고 문을 당겨 받쳤다. 비가 들이치는 쪽으로 서경의 앞치마 끈이 날렸다. 서경은 그 끈을 고쳐 묶을 여유가 생긴 것을 알고 나서야 자기 손이 젖어 있다는 걸 느꼈다.

분식집 창문 안에서 손님이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미란이 손가락으로 잠깐만 기다려 달라는 표시를 했다. 서경이 미안하다고 하자 미란은 “저쪽은 조금 기다려도 돼”라고만 말했다. 괜찮은 일이어서 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기 가게를 잠깐 두고 와서 서경 쪽 문을 잡고 있었다.

지선은 두 사람 사이로 나갔다. 팔에 걸친 코트가 문턱을 스쳤다. 서경은 옷자락을 들어 주려다 손을 거뒀다.

“다온상가로 가세요?”

“따라오지 마세요.”

지선은 가게 두 칸을 지나자 걸음이 빨라졌다. 모퉁이를 돌면 어느 문으로 들어가는지 보이지 않았다. 서경은 보도에 한 발을 내딛었다.

미란이 함께 한 발 움직였다. 서경은 골목을 보다가 전화기를 들었다. 신고 문자 창을 열어 손님이 나갔으며, 남색 니트에 회갈색 코트를 들고 다온상가 쪽 골목으로 간다고 보냈다.

전송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 지선의 몸이 모퉁이에 반쯤 가려졌다.

“지선 씨.”

흰 표찰이 한 번 더 보이고 사라졌다. 서경은 발을 떼려다가 멈췄다. 조금 전 지선은 아이를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모퉁이 너머에서 어느 문이 열리는지, 여기서는 볼 수 없었다.

“들어가는 데까지만 볼까요.” 서경이 말했다.

미란이 골목을 봤다. “그 다음에는?”

서경은 대답하지 못했다. 다온상가의 어느 계단으로 올라가는지도 몰랐다. 손님은 이 길을 알고 있었고,서경은 조금 전 접수장에 적은 주소만 알고 있었다.

미란은 서경 팔을 잡아 세우지 않았다. 문을 놓고 한 걸음 나와 서경과 나란히 섰다. “나는 저쪽 손님들한테 말해 놓고 와야 해. 같이 갈 거면 잠깐은 걸려.”

그동안 지선은 더 멀리 갈 것이었다. 혼자 먼저 가면 될 것 같다가도,모퉁이 너머에서 자기 전화기만 들고 무엇을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서경은 따라가는 대신 지금까지 본 방향을 말하기로 했다. 휴대전화 화면에 받지 못한 전화가 남아 있었다.

서경은 부재중 전화에 남은 번호를 눌렀다. 출동한 경찰이라고 밝힌 사람이 세탁소 위치를 물었다.

“맞은편 분식집에 빨간 천막이 있어요. 저는 지금 문 앞에 있고요. 손님은 다온상가 쪽으로 갔어요.”

미란이 서경 옆에서 큰길 쪽으로 손을 들었다. 제복을 입은 두 사람이 세탁소 간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서경은 통화를 끊고 골목을 가리켰다.

“남색 니트에 코트 든 분이요. 방금 저 모퉁이를 돌았어요.”

한 경찰관이 곧장 골목으로 갔다. 다른 경찰관이 서경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가게 안 카운터에서 접수장을 가져와 펼치고, 전화기에서 열쇠 사진을 열었다.

“다온상가 이층까지 배달해 달라고 했어요. 열쇠에는203이라고 쓰여 있고요. 아이는 못 봤어요.”

서경은 경찰관이 알려 준 번호로 열쇠 사진을 보냈다. 그가 현장 동료에게 사진을 전달하는 동안 미란이 접수장 반대쪽을 받쳤다. 종이가 젖지 않게 셋이 처마 안으로 물러서자, 골목으로 갔던 경찰관이 지선과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아이 있는 데도 가신 거예요?” 서경이 물었다.

사진을 받은 경찰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온상가 쪽에서도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는 전화기를 잠깐 보고는 서경에게 다시 물었다. “처음 물건 나온 자리부터 말씀해 주시겠어요?”

서경은 열쇠 사진을 띄운 전화기를 접수장 옆으로 옮겨 들었다. 오른쪽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고,왼쪽에서 이름표를 꺼낸 순서를 말했다. 혼자 있던 때와 손님이 돌아온 뒤를 나눠 말하려니,곧바로 작업했다고 한 거짓말에 닿았다.

경찰관은 서경이 멈춘 곳에서 말을 재촉하지 않았다. 미란이 젖은 접수장 끝을 한 번 접어 받쳤다. 서경은 지선의 얼굴을 봤다. 골목에서 돌아오는 동안 지선은 코트를 내려놓지 않았다. 아직 실제 아이를 보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코트를 맡긴 분이 이분 맞습니까?” 돌아온 경찰관이 물었다. 서경이 고개를 끄덕이자 지선이 코트 소매를 들어 보였다. “세탁한다면서 붙잡아 놓고 아무것도 안 했어요.”

“맞아요. 시작했다는 건 거짓말했어요.” 서경은 경찰관에게 말했다. “밖에서 잠갔다는 문자도 제가 짐작해서 보낸 거예요.”

지선이 입을 열려 하자 서경은 말을 이었다. “직접 들은 건 문을 열어 줘야 한다는 말이에요. 안에서 못 여냐고 물으니까, 밖이 계단이라 혼자 나오면 위험하다고 했어요. 혼자 있냐니까 잠깐이라고 했고요.”

“잠깐 나왔다고 했어요.” 지선이 말했다. “오래 두고 온 것처럼 말하지 마세요.”

서경은 손님을 보다가 경찰관에게 시선을 돌렸다. “코트만 맡기고 가려고 했다는 말도 하셨어요.”

자기에게 불리한 말을 한 뒤에는 더 짧게 끝내고 싶었다. 거짓말했다고 했고,짐작한 것도 인정했으니 누가 됐다고 말해 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지선은 계속 서경의 대답을 기다렸다. 서경이 틀렸다는 말이 아이의 현재를 대신하게 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아이가 괜찮은지는 몰라요.”

목소리가 처음보다 작아졌다. 사진을 받은 경찰관은 접수장과 자기 전화기를 번갈아 봤다. 미란은 서경이 든 종이의 끝을 놓지 않았다. 누구도 서경 대신 그 방 안을 봤다고 말해 주지는 않았다.

사진을 받았던 경찰관이 자기 전화기에 그 말을 적었다. 지선과 온 경찰관의 전화기가 울렸다. 그는 잠깐 듣더니 코트 아래로 나온 흰 표찰을 봤다.

“203호에서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문은 아직 안 열렸고요. 열쇠 주세요. 제가 가져가서 열겠습니다.”

경찰관이 손을 내밀었다. 지선은 고리를 쥔 손을 코트에 붙였다. “제가 열게요.”

“함께 가셔도 됩니다. 문은 제가 열고 아이 상태부터 확인하겠습니다.”

“제가 말하면 대답해요.” 지선이 말했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는 말 안 하려고 그래요.”

경찰관은 손을 거두지 않았다. “어머님도 같이 말씀하시면 됩니다.”

지선은 고리를 내려다봤다. 손가락 사이에 끼워 둔 긴 열쇠를 빼려다가 다시 쥐었다. 코트 소매가 손등으로 흘러내렸다. 서경은 그 소매를 올려 주려다 자기 손을 앞치마에 붙였다.

“잠깐 맡기면 되는 거예요?” 지선이 물었다.

“우선 문부터 열겠습니다.”

지선은 골목 쪽을 봤다. 지금 여기서 코트를 다시 접거나 사진을 더 보여 주어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녀가 자기 손 안의 고리를 돌렸다. 열쇠 두 개가 겹쳤다가 벌어졌다. 이번에는 닫힌 주머니 안이 아니라 경찰관이 내민 손 바로 위였다.

지선은 경찰관의 손을 봤다. 고리를 감싼 손가락이 하나씩 펴졌다. 긴 열쇠 끝이 경찰관의 손바닥에 먼저 닿고, 흰 표찰이 그 위에 내려앉았다.

경찰관은 표찰의 203을 확인하고 고리를 엄지에 걸었다.

지선은 빈손을 니트 주머니에 넣었다가 이름표를 꺼냈다. “그럼 이것도 아이한테 주세요. 가방에 다시 달아 준다고 했어요.”

경찰관이 천을 받았다. 곁에서 서경이 말했다. “신고한 이름표예요. 그 번호로 전화해 달라고 해서 직접 뗐다고 하셨어요.”

지선이 노란 천 끝에 손가락을 댔다. 경찰관이 이름표를 주머니에 넣으며 골목으로 몸을 돌리자 손이 천에서 떨어졌다. 지선은 코트만 팔에 걸친 채 그를 따라갔다.

미란이 문을 받쳤다. 남은 경찰관이 접수장을 받아 카운터로 가져갔다. 서경도 안으로 들어와 유리 너머를 봤다.

이번에는 경찰관이 먼저 모퉁이를 돌았다.